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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1호 기획대담] 미디어운동, 10년을 논하다 (10)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 + 장지혜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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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4. 11. 1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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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1호 기획대담 2014.12. 01]




기획대담(10) 미디어운동 10년을 논하다 -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을 창작자, 기획자, 비평가로 길러내는 것이 우리 영화제의 역할”

-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 장지혜 대담




진행 및 정리 : 장지혜(독립영화 관객), 김주현(ACT!편집위원회)




편집자 주 : 액트 기획대담이 어느덧 아홉번째를 맞았다. 이번에는 영화제를 다뤄보기로 했다. 마침 이번 호 액트가 발행될 즈음이 서울독립영화제가 개최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 사무국장은 한달 남짓 남은 영화제 준비에 여념이 없어보였다. 대담을 함께 진행한 장지혜씨는 한예종 영상이론과를 졸업하고 장애인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을 했었다. 대담은 지난 10월 18일 상수동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느슨하지만 강력한 네트워크의 힘 


김동현(이하 김):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에서는 2006년부터 일해서, 올해가 9년째다. 그 전에는 강릉에서 활동했었다. 97년 학교를 졸업했는데, 그 즈음 전국적으로 시네마테크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지금까지 유지하고 활동하고 있는 곳은 강릉 시네마테크, 청주 시네오딧세이인데, 나는 강릉 시네마테크 회원이었다. 영화를 좋아해서 사람들과 모여 시네마테크 운동도 하고, 그 때 마침 인디포럼도 생기고, 젊은 독립영화인들이 모이게 된 시기라 일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졸업하고서 다큐 상영회를 기획한다든지 활동들을 하고 있었고, 98년부터는 정기적으로 인권영화제를 개최했었다. 98년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가 생기면서 활동하던 지역 단체도 회원단체가 됐고, 99년에는 한독협이 서울 중심이 아니라, 지역과 같이 하는 사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정동진독립영화제를 기획하여 진행하면서 영화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2001년부턴 정독진독립영화제 사무국장로 일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했는데, 지역에서 활동하다보니 나 자신의 발전도 없고, 지역의 상황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공부를 해보자는 목적으로 서울에 왔는데, 그 전부터 같이 일했던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얘길 해서, 그때부터 일 하게 됐다. 그 전에는 다른 직업이 있는 와중에 영화제나 기획 일을 하고 있었고, 엄밀히 말해 직업으로서 영화제 일을 하게 된 것은 2006년부터이다. 


장지혜(이하 장): 영화를 좋아해서 이것저것 챙겨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영화제를 포함해서 활동할 수 있 계기를 찾게 되는데 고민도 되고 어렵다.  


김: 요즘은 오히려 극장도 많고, 영화제도 많아서 부럽다. 우리는 기회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그런 제한적인 기회에 시작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래간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좀 더 명백하게 자기 활동의 목표나 이유를 찾았던 것 같다. 지금은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나 영화제가 너무 많으니까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요즘이 부럽다. 


장: 기반을 다져가는 과정의 집중도가 컸을 것 같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기회가 많아졌지만 저의 경우 아직 막연하고, 그만큼 더 갈팡질팡하게 된다.     


김: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힘이 정말 있는 것 같다. 새롭게 판을 일구어 가는 것의 메리트가 굉장히 컸다. 젊었고, 에너지도 많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에 대한 재미가 있었다. 초기 시행 단계에서 어떤 성과가 없으면 사람이 지치고 의미를 찾기가 어려운데, 계속 작은 성과들을 만들어 가면서 그게 다음으로 계속 이어지고, 그렇게 판을 만들어가던 때였다.  


장: 영화를 보는 것과 활동을 같이 가져가신 셈이다. 저의 경우는 오랫동안 영화를 보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뭔가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추진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 기획대담을 함께 진행한 장지혜(왼쪽)과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오른쪽) 




김: 그래서 네트워크가 중요한 것 같다. 그 때 우리도 만약 고립되어서 혼자였다면 못 했을 거다. 당시에 나는 지역에 있었고, 지역에 어떤 활동가들이 있었는지 서로 다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지역에서 일 년에 한 번 하는 행사지만, 당시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 왔었다. 그렇게 모여서 다들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소식들을 나눌 수 있었다. 느슨하지만 강력한 네트워킹이 있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활동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네트워킹 한다는 느낌은 많이 없는 것 같다. 예전엔 뭔가 새로운 뭔가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에너지를 가지고 활동했다면,  지금은 누구는 협회로, 누구는 배급사로, 누구는 극장으로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고착화 되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직업으로 엮여있다 보니,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도 계속 월급을 주거나 하지 못하면 계속 그 활동이 유지 되지 않게 되고 많이 바뀌어서, 과거와는 많이 달리진 패턴이다. 한독협이 생기면서 지역의 시네마테크 일부가 한독협 안의 일종의 시네마테크 분과로 들어가게 되면서 네트워킹의 장이 중단되었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계속 이어지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지역의 시네마테크들이 문을 닫는 상황이었고, 문화학교 서울만 해도 2002년부터는 서울아트시네마로 전환해서 목적의식 뚜렷한 사업들을 영화진흥위원회와 결합하여 진행하는 패턴으로 바뀌고 있었다. 




단지 ‘영화제 스태프’가 아니라 ‘독립영화 활동가’


장: 활동에 대한 지속성에 대한 고민도 된다. 영화제 일이라는 것이 굉장히 불안정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활동가들이 한 곳 자리 잡지 못하고 영화제들을 전전하게 되면 영화제 내부적으로도 축적되는 힘이 덜해질 것 같다. 서독제의 경우 상근 비상근 같은 인력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어느 정도 개인차는 있겠지만 활동가 분들은 주로 어떤 식으로 경력을 쌓아가게 되는지 궁금하다. 


김: 지금은 규모가 커져서 피치 못하게 영화제에 단기 스태프가 결합되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서독제는 한독협이 주최하는 행사이고, 영화제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도 독립영화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다. 영화를 통해서 활동을 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비상근은 없다’는 것을 목표로, 상근자를 확대해나갔다. 우리는 서독제 스태프가 단순한 스태프가 아니라 활동가이기를 바라고 있고,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물리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영화제는 12월에 개최되고, 본 행사 준비는 6월 정도부터이다. 나머지 6개월은 사업이 없기 때문에 다른 영화제들의 경우 단기 스태프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독제에서는 일상 사업을 만들어나갔다. 순회 상영도 하고, 배급 사업, 제작 사업도 한다. 그렇게 사업을 만들어나가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일정한 우리의 인적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장치 마련이기도 했다. 지금은 영화제 규모가 늘면서 바뀌기 전까진 모두 상근직이었다. 초기에 영화제가 어려울 때는 누구나 다 2개월 정도는 급여를 안 받거나 반 정도만 받고, 3개월부터 월급이 나가는 구조였다. 내가 들어왔을 때는 한 달 정도 안 받고 일했다. 이 구조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서, 월급은 좀 적더라도 1년 동안 받는 걸로 바꿨다. 그럼에도 활동가들이 남는 듯하면서도, 잘 안 남는다. 영화제 특성상 아주 젊은 활동가들과 결합하는데다, 급여가 적기 때문에 경험 많은 사람이 오기가 힘들다. 자원활동가를 했던 사람이 오거나, 영화제의 관객이었다가 활동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는 오래 남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2,3년 정도에 계속 바뀌더라.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려고 노력은 하는데, 의외로 오래 활동한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쨌든 한편으로는 우리 활동가로 남아있다. 다른 단체나 배급사에서 활동하는 식으로 활동에 있어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계속 연결 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는 집행위원을 포함하여 상근자 4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영화제 규모가 훨씬 커져서 상근자가 늘어나야하지만, 버거운 부분도 있어서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단기 스태프로 일하는 걸 원하는 부분도 있다. 영화제가 많아지면서 단기 스태프 활동들로 경험을 많이 쌓은 친구들은 또 그렇게 자기 리듬으로 생활을 유지해가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상근직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되도록 활동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활동가라는 건 꼭 우리 영화제 활동가라는 것 뿐 아니라, 크게 봤을 때 독립영화 활동가라는 개념이다. 우리 영화제에서 일을 오래하게 되면, 영화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프로듀싱 경험도 쌓아가게 된다. 우리 활동가들이 독립영화 관련된 정책이나 이슈에 개입하기를 바라는 것도 있다. 2년차 이상이 되면 가능한데, 아직은 후배들이 많이 어리다 보니 그게 잘 안 된다. 활동가들이 오래 남아서 그런 일들을 해줬으면 한다.  


장: 인디피크닉 상영회가 올 해로 11주년이라고 들었다. 이런 상영회가 지금은 다른 영화제에서도 많이 생겼는데, 인디피크닉이 영화제 일상 사업으로서 좋은 선례가 되었던 것 같다. 


김: 정기적으로 상영회를 하게 된 데에는, 첫째로 활동가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창작자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배급사가 아니기 때문에 창작자들과 계속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인디피크닉이나 다른 배급 사업을 하게 되면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하게 된다. 일상적인 교류 가운데 다른 아이디어들이 나오기도 하고, 우리가 창작자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친밀해진다. 그렇게 창작자와의 접점을 만들어갔다. 세 번째 이유는 일상적인 배급을 위해서였다. 배급이 영화제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다보니, 일상사업의 상영회를 통해 감독들의 영화를 다른 경로로 적극적으로 배급한다는 차원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역 커뮤니티들과의 네트워킹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다른 영화제와 달리 서독제는 독립영화의 여러 상황들을 같이 포괄하게 된다. 지역에서는 프로그램 수급 등이 힘들다. 그래서 우리가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지역에 내려주고, 지역에서는 저작권 협의가 된 작품들을 적은 비용으로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지역 지원 사업이기도 한 셈이다. 초반에는 이렇게 배급이나 지역 지원이 강력했다면, 지금은 다른 유사한 사업들이 많아져서 많이 힘을 주어 진행하고 있는 편은 아니다. 유사한 상영회들이 많아지면서 서독제만의 차별화를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일단 현재는 애초의 패턴과 목적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 사무국장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노력 


장: 영화제 규모는 자연스럽게 점점 커지고 있는 건가. 그만큼 관객층도 넓어진 건가.


김: 예전에는 독립영화를 접하는 것이 영화제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개봉작들이 늘어나면서 일정하게 대중적인 기여를 하는 작품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그에 따라 독립영화 소비층이 전체적으로 늘어난 것 같다. 서독제를 계속 찾는 일정한 관객층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직 관객 분석이 잘 되어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영화제가 다른 독립영화제에 비해 여건이 좋은 건 사실이다. 영진위의 지원을 받고, 한독협이 주최를 하면서 일정한 인적 네트워크 지원이 가능한 구조이다. 실무자들도 상근 활동가들을 키워나간다는 게 있어서 행정적인 인프라도 쌓여있다. 안정적으로 영화제를 운영해 나가 덕분에 관객들이 떠나지 않고 일정하게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행사를 늘린 것 같지만, 다른 영화제들이 행사를 늘리는 것에 비하면 정말 바위처럼 안 늘렸다.(웃음) 종종 영화제들이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데 자꾸 행사규모를 늘리는 경우가 있다. 행사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늘리고 싶다는 욕망이 들긴 한다. 비슷한 사업 내에서 계속 새롭게 하고 싶은데, 사업 자체를 새롭게 산다는 게 어렵기 때문에 규모를 늘리는 면이 있는 것이다. 영화제는 어쨌든 보이는 게 크고 화려할수록 뭔가 있어 보이다보니, ‘우리도 늘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우리는 좀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늘리지 않았다. 상영관 1개를 늘리기 위해서는 2,3년 정말 논의를 많이 하고, 준비를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영화제는 규모를 늘리는 것에 의해서 흔들리거나 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갔다. 특히 규모를 늘리는 부분에 있어 가장 큰 유혹은 해외 부문이다. 해외 부문을 확장하면 규모가 확 늘어나고, 곧 예산도 늘어나게 된다. 예산이 늘면 지원을 더 요청할 수도 있고 후원이나 협찬도 그런 명분으로 더 늘릴 수 있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부분에 있어 신중한 편이다. 앞으로도 안 늘릴 가능성이 더 크다. 해외 부문이 늘어나면 규모는 확 늘어나는데 비해, 그만큼 국내 감독에 대해 일정하게 케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장: 서독제 보면 크게 경쟁 부문과 초청 부문이 있고, 해외작품도 포함 되는데, 균형을 어떻게 맞추나?


김: 일단 경쟁 부문이 중심이다. 경쟁이 60, 초청이 40이었다면, 올해는 경쟁이 40, 초청이 60이다. 경쟁 부문은 심사와 직결된다. 심사를 위해서 심사위원들이 영화제 기간 내내 극장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포맷과 장르를 다 믹스해서 심사한다. 시간 제약 상 스무 작품 이상이 나오기 힘들다. 다만 국내 경쟁에서 상영할 수 있는 편수가 너무 제한되다보니,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아깝게 떨어지는 작품들도 그만큼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새로운 선택’이라는 일종의 서브 경쟁을 도입했다. 특별 초청의 경우에는, 우리 영화제에 출품하지 않은 작품들이나, 다른 이유로 상영될 만한 이유가 있거나 중요한 담론을 지닌 작품의 경우 특별 초청 형태로 상영한다. 해외 초청은 영화제 프로그램에서 일종의 감초 같은 역할이다. 시네필의 욕망도 충족시키면서, 국내 창작자들이 보고 영감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작품들을 선별한다. 올해는 특히 미국 독립영화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 슬로건도 ‘독립본색’이다. 물론 산업적인 면에서 파이의 크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가 미국과 패턴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84년~94년 사이의 미국 독립영화를 집약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지금 독립영화가 저예산 영화와 접점을 만들어가면서 산업적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미국도 지금은 완전히 산업적으로 넘어갔다. 미국 독립영화와 비교 가능한 측면이 있다. 지난 시간의 작품들을 돌아보니 우리가 배울 것은 없는 지 살펴보려고 한다. 


장: 영화제의 상영 외에도 많은 고민이 있을 것 같다. 독립영화를 둘러싼 상황들이 계속 변하고 있는데, 그런 지금의 상황에서 서독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김: 지금 요구되는 것은 다른 영화제와 비슷한 것 같다. 서독제는 결산 영화제로서의 상징이 있다. 영화제는 배급과 제작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가는 것 같다. 전체적인 독립영화 유통과 창작, 배급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하지만 모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활동에 있어서 전략적인 부분이 부족한 것도 있다. 유기적인 사고가 필요한 것 같다. 배급사 등과 같이 할 수 있는 사업을 모색 중이다. 영화를 고르고, 상영하는 것이 영화제의 목적이기는 하지만, 서독제가 갖고 있는 축제의 위상을 다른 독립영화 진영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상태에서 생각을 공유할 수도 있고, 영화제를 이용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 기획대담을 함께 진행한 장지혜 씨




장: 제가 일했던 ‘장애인영화제’는 지역의 다른 장애인영화제들에 비해서 규모가 큰 편이긴 하지만, 지역별로 비슷한 이름과 콘셉트의 영화제들이 많이 있다. 일 하면서 느꼈던 것은 그러한 여러 지역의 장애인영화제들 간의 교류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특히 지역의 어려운 여건을 생각한다면, 영화제들 간의 네트워크가 크게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런 것에 반해 서독제는 관계 안에서 진행되는 것 같다. 


김: 그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애초에 그런 네트워킹을 통해서 시작된 사업이기도 하다. 내가 강릉에서 여기에 온 것도 그런 네트워킹의 일환으로 활동의 연결고리가 있었던 거다. 일종의 큰 원칙에 위반되면, 우리는 차라리 이익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떻게 보면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그렇고, 조영각 집행위원장의 힘도 있었다. 사업을 많이 하고 싶어 하는 편인데, 이런저런 사업을 다 했다면 아마 나도 지쳤을 것 같다.  


장: 시류에 편승 한다면 어떤 것을 말하나. 


김: 예민한 부분이긴 하다. 우리도 지금 아주 안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예를 들어 스타 마케팅 같은 것이 있다. 영화제는 감독은 영화의 힘으로 가야 한다. 홍보대사를 활용하면 기사가 많이 나지만 안한다. 뭘 우리까지 그러냐 싶기도 하고, 그렇게 영화제가 알려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요즘에는 조금씩 하기는 하지만(웃음), 크게 봤을 때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려고 한다. 




창작자의 작품이 관객에서 잘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장: 이전까진 영화와 나의 관계를 일대일 관계로 생각했었는데, 영화제 일을 경험해 보면서 바뀌었었다. 그 점이 가장 크게 다가왔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영화제를 일로 경험하는 것과 관객으로서 참여하는 것 사이의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김: 이런 얘기를 들으면 부럽다.(웃음) 새롭게 영화제 일을 통해서 그런 느낌 갖는다는 게 좋다. 나는 영화제를 총괄하는 사람이다 보니, 처음 시작하는 스태프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나는 처음부터 사무국장이었다.(웃음) 사실 우리도 관객으로 시작했다.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영화들이 많았고, 그 영화들을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해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장: 영화제를 하면서 감독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그런데 이게 과해지면, 영화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은 경계해야할 부분인 것 같다. 


김: 경계해야 할 부분일 수도 있지만 영화제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디테일하고 차별화된 즐거움이기도 하다. 창작자들은 자기 작품에 대해서 정확하게 얘기해주길 원한다.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옹호나 지지의 성격이 있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갖고 있는 한계가 분명 있는데 그건 잘 얘기하지 않는다. 그런 걸 얘기해주면 감독들도 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좋아하고 귀 기울인다. 그걸 통해서 창작자와 기획자 비평가가 굉장히 다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그냥 수박 겉핥기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 특별히 창작자에 대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


김: 창작자의 작품이 관객에서 잘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서 최선을 다한다. 최상의 포맷과 상황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힘들게 만들고, 힘들게 고른 영화를 관객들과 즐겁게 만나야 하지 않겠나.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관객을 모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영화제는 감독과 관객이 만나는 것이고, 기획자는 그 매개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관객을 만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감독과 감독들이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부분도 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창작의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들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장: 서독제는 젊은 감독들의 비중이 큰 편이다. 영화제가 발굴한 작가와 함께 영화제가 성장하는 것에 대한 욕심도 생길 것 같다.


김: 그것까지는 감당이 안되는 게 있다. 다만 감독을 발굴을 하고, 그 감독이 다시 작품을 만들어서 우리 영화제에 오기를 희망하는 거다. 영화제에 참여하는 감독이 너무 많아서 몇몇 사람만 집중적으로 지원하기는 어렵고, 어쨌든 좀 더 접점을 만들기 위해 소소하게 진행하는 게 순회상영이나 배급 사업이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제작 사업도 하고 있다. 인디트라이앵글이라고 해서, 아직 장편 데뷔하지 않은 신진 감독들에게 작품 제작의 기회를 주고, 조금씩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감독들은 너무너무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제작, 배급해서 그들이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베이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독립영화 콘텐츠 시장에 기여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옴니버스를 통해 감독들끼리 교류하고, 우리 영화제와도 접점을 만들어간다. 제일 처음 시작했던 작품이 <원 나잇 스탠드>이고, 민용근, 이유림, 장훈 감독이 함께 했다. 민용근 감독은 이젠 대표적인 스타 감독이기도 하다. 제작지원 기회가 많이 늘어난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부터는 공모형태로 진행되었고,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이 올해 영화제에서 소개된다. 내년에는 개봉 예정이다. 그런 게 좋다. 감독들이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인프라로 제작하고 개봉까지 갈 수 있다. 요즘은 <서울연애>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웃음) 


배급 전에는 마케팅도 했었다. 2008년에 독립영화 전용관이 생기면서, 상업성이 떨어지는 독립영화도 개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당시 김조광수 감독님한테 마케팅 수업을 들었다. 마케팅 배워서 독립영화들 배급이 잘 안되는데, 혹시라도 내가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 <고갈>을 레퍼런스로 기획을 짰고, 김조광수 감독님이 그럼 아예 직접 마케팅해서 개봉해보라고 했다. 그때 생각보다 관객도 많이 들고, 정말 좋았다. 서독제에서 대상을 받긴 했지만, 난해하고 실험적인 영화였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마케팅 하지 않았다면 묻힐 영화였다. <고갈>의 경험을 통해 시장에서도 이런 영화에 일정하게 사람들이 찾아오는 구나 싶었고, 피드백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최근에는 <NOW>라는 인터뷰 잡지도 나오고 있다. 우리 스태프 중에 한 명이 자기는 종이 잡지가 너무 좋고, 독립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럼 우리가 만들어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관심과 능력을 독립영화와 잘 결합해서 판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관객과의 접점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장: <NOW>를 ‘인터뷰 매거진’으로 기획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 차별화된 콘텐츠를 갖기 위한 것도 있었고, 이 매거진을 통해 우리 활동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 활동가들이 공덕동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웃음) 영화제는 영화제, 배급은 배급, 극장은 극장 이렇게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측면이 있는데, 인터뷰를 통해 활동가들이 같이 모여 서로 얘기도 나눠보고, 감독들도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았다. 기사 취재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고, 활동가 네트워크도 일정하게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활동가들이 너무 일이 많아서 생각만큼 네트워킹이 잘 안되고는 있다. 힘들어하기도 하는데, 많이 재밌어 하면 좋겠다. 취재하면서 활동가들이 정동진도 하고, 밀양도 갔었다.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효과가 있다. 


장: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가 많아서, 독자로서 재밌게 읽고 있다. 


김: 기존에 비평지가 있으니까, 비평의 역할을 거기에 주고, <NOW>는 좀 더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한독협 비평지처럼 회원들에게 주거나, 판매할 계획은 없었고, 무가지로 뿌려서 좀 더 공격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려면 쉬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를 독립영화만 보는 매니아층으로 두고 있지 않다. 


장: 지금 포맷을 계속 유지해 갈 예정인가. 분량을 더 늘릴 계획은 없나. 


김: 일단은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인력이나 자금의 문제도 있어서 쉽지는 않다. 


장: 영화제의 경우 피드백은 어디서 어떻게 받게 되나. 장애인영화제를 진행하면서 피드백에 대한 아쉬움, 갈증이 가장 컸다. 관객들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지도 궁금했다. 


김: 영화제에서 일하는 사람은 피드백을 거의 못 받는다. 오래 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배급이나 마케팅은 오히려 피드백이 확실하게 있지만, 영화제는 발굴만 하는 것이어서 흘러가는 물 같은 것이다. 일종의 과정이다. 상영하는 영화도 워낙 많다보니, 영화제에서 닻이 내려지기는 어렵다. 오히려 다른 곳들에선 몇몇 작품에 집중되기 때문에 영화제 이후로는 감독이든 작품이든 닻을 내리는 것 같다. 서독제 수상이라는 기록이 남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작품을 계속 케어하고 관계를 가져나가는 것은 배급사나 극장이지 영화제는 아니다. 한 작품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과정을 봤을 때, 영화제는 분명히 중간 과정에 있다. 그 것이 결과물의 형태로 남는 건 배급 같은 것이다. 아주 소수의 작품들이 이 과정으로 가고, 우리는 다수의 작품들을 품는다. 영화제는 그냥 흘러가는 것 같아서, 그런 허무함 같은 게 느껴질 수 있다. 정기상영회 같은 것을 하면서 그걸 보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우리를 활동가라고 생각하지, 기능적인 스태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판 안에서 계속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도 피드백을 받아야 하고, 일정하게 기여도 해야 한다. 영화제 하려면 스태프들에게 영화 다 보라고 한다. 감독들과 얘기하려면 영화를 봐야한다. 그리고 그런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프로그램 노트도 쓰게 하고, GV도 진행하게 한다. 관객들에게 영화를 직접 안내한다는 것 자체도 자신한테 피드백을 주는 행위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킹 하는 것은 영화제의 큰 장점이다. 큰 규모의 영화제는 그게 어려울 수도 있는데 오히려 독립영화제라서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장: 관객에 대해서는 어떤가? 관객에 대해서 일단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숫자 정도인데, 그 이상의 것을 확인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이 와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가는지 정말 궁금한데, 그런 부분들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되기도 했다. 


김: 궁금해 하는 태도 자체가 좋은 것 같다. 관객과 감독의 매개에 있는 사람이라면 관객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답을 찾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감독이 물고기라면 관객은 깊은 바다 자체인 것 같다. 이게 불가능한 기획이지만 나는 기획자들이 직접 말을 걸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말을 걸려고 하는 행위, 얘기를 들으려고 하는 행위가 중요하다. 영화제 데일리에서 관객 인터뷰를 하거나, 관객 심사단을 모집하는 것도 그런 목적으로 시작됐다. 나는 우리 관객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관객에서 출발해 이렇게 기획자가 된 것처럼, 저 미지의 바다에서 정말 훌륭한 감독이나 기획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을 하면 100퍼센트 만족하는 그런 프로그램은 없다. 논쟁을 하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받기는 어렵다. 같이 기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발생해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관객들 중에서는 프로그램의 함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제 하면서 항상 관객 설문을 하는데, 관객들이 생각보다 정확하게 독립영화의 개념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산업 쪽에서는 저예산 영화라고 하지만, 우리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 실험성, 사회성 등 그동안 독립영화가 지향해왔던 가치들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선택하더라. 관객들이 우리가 늘 찾고자 하는 독립영화의 정신이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많이 동의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사실 관객들과의 접점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영화제를 하는 사람도, 감독도, 굉장히 달라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관객들 중에서 창작자, 기획자, 비평가를 길러낼 수 있어야 이 판도 순환이 된다. 그리고 그게 우리 영화제의 역할인 것 같다. 좋은 관객들을 찾아내서, 그들이 독립영화라는 문화 안에서 새로운 일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이 번 영화제의 홍보도 부탁드린다. 


김: 서울독립영화제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최근 많이 바뀐 독립영화의 환경에서 다른 비전을 우리가 찾았으면 좋겠다. 작품들도 가장 많이 출품됐고 상영작도 아마 가장 많을 것 같다. 재밌는 작품도 많아서 많이 찾아주면 좋겠다. 영화제와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 같이 고민할 앞으로의 과제가 많은데 영화제라는 장을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 보다 더 많은 관객과 만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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