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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9호 기획대담] 미디어운동, 10년을 논하다 (8) 독립영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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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4. 6. 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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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9호 기획대담 2014.06.25]


 

액트 기획대담(8) - 독립영화비평10

“독립영화의 진정한 독립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다”

: 변성찬, 권은혜 대담


권은혜(독립영화 애호가)


필자 주 :독립영화비평 10” 이라는 대담 주제를 가지고 변성찬 평론가와 마주 앉았다. “독립영화 10은 익숙한 주제겠지만 독립영화비평 10”, 독립영화 비평의 역사라는 주제는 낯설고새삼스러운 주제였다결국 대담은 독립영화비평 10년의 역사에 대한 대화보다앞으로 보게 될 기록에서 언급되는 독립영화가 키운 영화평론가 변성찬에 대한 인터뷰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그럼에도이 개인적으로 보이는 기록들 사이에는 독립영화 비평이 다른 영화들을 비평하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비평적 의미에서의 독립영화와 정책적 의미에서의 독립영화의 차이현재 독립영화 비평이 마주한 과제 같은 독립영화 비평을 둘러싼 문제적 지점들이 잘 벼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권은혜(이하, ) : 등단은 씨네21’에서 홍상수론, <복수는 나의 것> 작품론으로 하셨잖아요. 어떤 계기로 독립영화 비평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변성찬(이하, ) : 2008년에 인디포럼에서 프로그램 일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지. 당시 인디포럼에 박정수 감독님이 있었어. 그 다음에 박정숙 감독님이 인디다큐 집행위원을 맡으면서 조금씩 빠져들었어(웃음). 과정은 비슷할 것 같은데, 남다은 평론가가 2007년부터 이송희일 등한테 엮여서 인디포럼 상임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걸로 알아. 매년 하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같이 할 사람을 아마도 남다은이 추천을 했을 거야. 홀수년, 짝수년 나눠서 프로그램 하자고.

 

: 그 전에는 여러 방면의 영화들을 두루 쓰는 평론활동을 하셨던 거죠?

 

 : 주로 청탁이 들어오면 쓰고 없으면 안 썼어. 2002년에 등단을 했고, 원고를 우체통에 넣은 날에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수유너머에서 공부를 시작했지. 그 때는 학원 강사를 하던 때였는데 초창기에 일주일에 5개씩 세미나를 했어. 그렇게 까지 한 것은 일종의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이고. 90년대가 문화의 시기였는데 그 당시에 학원 강사하면서 술 먹고 노느라(웃음). 영화 평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은 사실 그 10년 동안 워낙 책을 안 봐서(웃음). 퇴근하면 두 세 개 씩 빌려온 비디오 틀어놓고 보고 자고 했었지. 그래서 그래, 이걸 가지고 한 번 써보자.’ 그렇게 시작된 거였어.




: 어쨌건 당시 90년대의 영상문화를 접했던 건 맞으시네요.

 

: 가리지 않고 이런 저런 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메인스트림의 영화를 많이 봤어.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은 것은 안 봤지. <복수는 나의 것>으로 쓴 것은 그 때까지 본 한국 영화에서 <공동경비구역 JSA>가 최고라 생각해서, 그 연장선에서 고른 거였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쓴 것도 우연한 계기야. 같이 근무했던 한 선생이 좋아해서 추천을 하더라고. 그 친구가 좋아했던 이유도 단순했지. 강원도 친구라 <강원도의 힘>을 좋아했어(웃음). 그때 홍상수 영화가 세 편정도 있었는데, <생활의 발견>이 등단 시기랑 겹치는 작품이었어. 전반적인 글의 방향은 적극적인 지지의 입장보다는 비판적 지지의 입장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해서 깨닫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인 거 같아. <극장전> 나왔던 시기. 지금은 진심으로 홍빠에 가까운...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굉장히 무모하고 용감했던 것 같고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사실은 2008년부터라고는 했지만 구분이 필요한 것 같아. 2008년 들어서 독립영화를 접하고 영화제에서 요구하는 프로그램 노트라든지 한독협에서 발간하는 독립영화에서 요청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 독립영화에 대한 비평을 하지는 않았어. 게을러서 쓰라고 하면 쓰고(웃음). 그러다 보니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영화를 대상으로 한 글을 썼다기보다는 2년 전쯤, 2012년 무렵 씨네21독립영화 비행이라는 코너를 연재하면서 한 달에 두 번, 그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썼지. 본격적으로 독립영화에 대해 쓰기 시작한 것은 2012년에서 2014년 정도, 2년 정도 쓴 것 같네.

 

: 2008년부터 독립영화 쪽에서 일을 해 오셨고,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셨는데. 이전에 개봉하는 여러 영화들에 대해 쓴 것과 독립영화 비평을 주로 쓰면서 느끼셨던 차이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독립영화 비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 몇 년 전에도 한독협에서 몇 사람 불러놓고 대담을 한 적이 있어. 그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독립영화비평이라는 게 따로 있을 수 있는가, 라는 부분이었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기도 해. 독립영화라는 것 자체가 뭐냐? 라고 할 때 나는 지금 전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빈껍데기거나 어떤 의미에서는 보수적인 의미라는 생각을 하거든. 나는 나름대로 정서적 독립이 궁극적인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정치의 예술보다는 예술의 정치가 독립영화가 해야 할 몫이고, 근본적인 존재의 이유인 거지. ‘독립영화 비행코너를 연재하면서 밑에 짧은 후기를 쓰도록 하는데 특별한 할 말이 없으면 고정시켜놓은 것이 독립영화의 진정한 독립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거였어. 여기에는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지.

일단, 독립영화가 뭐냐 물어보면, “독립영화는 독립영화가 뭔지 고민하는 영화다. 상업영화가 상업영화에 대해 고민하는 거 봤냐라는 식으로 농반 진반 얘기했어. 내가 난감했던 때가 영진위에서 독립영화 인정 심사소위를 하는 순간이었어. 세계관, 정치적 입장이 나와 다른 경우에, 혹은 종교물 같은 경우에. 분명히 주류 영화는 아니고, 독립영화이긴 한데. 이걸 어떻게 할 것이냐. 제작 여건이나 방식의 차원에서 독립영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국의 대학영화도 마찬가지인데, 그 영화들이 다 독립영화 할거야’, 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경우 역시 마찬가지의 난감함이 있었어. 그렇다고 그것을 독립영화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 같고. 그러다 굉장히 실용적인 결론을 내렸어. 독립영화도 좋은 독립영화와 나쁜 독립영화가 있다고 정리했지. 독립영화제에 상영되는 게 독립영화가 될 수도 있는데, 내 기준, 정서적 독립영화라는 측면에서 독립영화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예를 들어 <워낭소리><똥파리> 같은 영화는 내 입장에선 굉장히 보수적이고, 독립영화로 인정을 안 하는데, 주제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독립영화제에서 상영을 하면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야. 왜냐하면 그건 독립영화에서 다양한 영화가 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되고,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지.




: 저도 재작년에 독립영화정책에 관한 일과 공부를 하면서, 초반에 가장 부딪혔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독립영화들에 대해서 비평적으로만 접근을 해왔었는데, 정책적으로 접근하니까 달라지더라고요. 제가 가지고 있던 독립영화에 대한 생각이 추상적이고 좁았다는 생각. 그걸 막 바꾸려 하다가, 결국에는 두 가지를 분리해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아요.

 

: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절충적인 입장이지. 내가 프로그래머로 참여할 때와 비평을 할 때, 서로 다른 내가 돼. 그런 의미에서 홍상수의 영화나 봉준호의 <괴물>도 독립영화라고 생각하고. 특히 극영화 쪽에서는 독립영화를 많이 보고, 의무적으로 글을 쓰면서 반은 의식적이고 반은 무의식적으로 주로 다큐멘터리를 많이 쓰는데 이유는 간단 한 거 같아. 독립영화 안에서 홍상수의 영화처럼, 극영화에서 정서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을 보지 못했어.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받은 것이 극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어.

질문으로 돌아가면, 독립영화비평하고 기타 다른 영화 비평과의 차이점은, 사실 없어. 차이를 느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 제도적인 차원의 구분법은 필요하지만, 그 구분은 어디까지나 실용적인 결론 같은 것이지, 그게 최종적인 구분인 것처럼 통용되는 것은 특히 비평행위를 할 때는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연장선상에서 얘기하면, 개인적으로 연재를 중단하기는 했지만 고민이 들었던 부분이 있어. 독립영화, 특히 다큐멘터리를 예로 들면,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와 작품으로서의 다큐멘터리라는 막연한 구분을 하는데, 이것이 굉장히 게으른 방식의 구분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액티비스트 다큐는 스타일이 없고 올드한 형식의 다큐멘터리라는 수사로 묘사가 되어버리고 마는 거지. 예를 들면 다르덴 형제가 극영화를 하기 전에 만든 다큐멘터리에 대한 글을 쓸 땐 안이한 태도로 접근하지는 않게 되지. 그만큼 그런 구분은 출발점일 뿐이지, 최종점을 구분하는 언어가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예를 들어 홍상수 감독의 어떤 작품에 대해 비평을 쓴다고 하면, 항상 그 전의 모든 작품이 맥락적으로 등장을 하고, 거기서 차이와 변주, 그 감독만의 일관성이랄지 그 작품의 정치적미학적 의지 등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거든.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래 영화를 만들어 온 김동원 감독님이나 김태일 감독님 등등 계시잖아. 태준식 감독만 하더라도 95년부터 했으니까 홍상수보다 1년 먼저 시작한 거고. 그런데 1년 먼저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그 전까지의 영화를 비평담론이 개입할 수 있는 외적인 것으로 놔둔다거나 반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위계가 있는 것 같아. 홍상수 감독의 작품은 나올 때 마다 다 봤지만 소위 독립영화 감독의 작품들은 거의 보지 않은 것이 많지. 어제도 그랬는데, 태준식 감독의 <슬기로운 해법> 개봉 맞춰서 메인 인트로를 써달라고 했을 때, 기질 상으로 영화와 비평적 대화를 할 때, 가장 먼저 참고로 삼는 것이 그 감독의 전작이기 때문에, 진짜 어려운 거야. 남다은이나 내가 아닌 다른 비평가의 경우에는 더더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원칙적으로는 차이를 두면 안 되는데, 홍상수 감독에 대해 비평을 쓰는 태도나 평가의 기준과, 독립영화에 대해 쓰는 기준이 달라지게 돼. 그런 현실적인 조건이 한편으로는 작동하는 거지.

독립영화 비평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는 않지만, 나같이 작가론 비평을 주로 할 경우에는. 이런 현실적인 부분들이 그 이전 작품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에 대해서 비평적으로 새롭게 발굴하는 행위를 게으르게 만드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공통적으로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해.

 

: 어떤 말씀이신지 공감이 돼요. 인디다큐 시간여행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상영하는 날 아니더라도 자료원에 자주 갔었어요. 꽤 많은 독립영화 작품들이 자료원에 아카이빙이 되어 있더라고요. 거기서 상영작 감독님들 이전 작품들을 많이 봤어요. 다르게는 볼 방법이 거의 없으니까. 그러면서 이걸 내가 좀 더 쉽게 볼 수 있으면, 전작들이 다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 첨언하자면, 변영주 감독님도 김동원 감독님의 <상계동 올림픽>을 보면서 스타일이 후지긴 하지만 힘이 있다고 얘기했고, 최근에 안건형 감독이 영화모임이나 자료원에 시간여행 와서 영화를 보면서 옛날영화들에 힘이 있다고 얘기하기도 했는데, 비평의 과제는 그렇게 힘으로 느껴지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건지, 주제와 내용과 스타일과 관련해서 그 영화들이 왜 힘을 갖는지 의미화 하는 것이지. 비평에서 의미화 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정한 독립영화를 이야기 할 때도, 스타일이나 미학과 무관할 수가 없고, 일종의 컨벤션에 안주하는 영화에 대해 평가절하를 하곤 하는데 결국 그건 부메랑 같은 거라는 거지. 독립영화 비평을 하는 사람들이 섬세한 구분이나 의미화를 하고, 그걸 담아낼 수 있는 언어를 발견해내지 않는 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게 비평의 가장 주된 역할인거 같아.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노력이나 연구, 공부가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독립영화 쪽에는 덜 투자되는 것 같아. 절대적인 비평가 수가 부족한 게 아니고, 그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거지. 좀 단순화 시켜서 말하면, 한국 독립영화 역사 안에서 선사시대처럼 언급되는 영화들에 대해서 최소한 다르덴의 초기 다큐멘터리 시절이나 고다르의 지가 베르토프 시절을 대하듯 대해야 해. 그것이 선결되어 있지 않고서는 굉장히 나태해질 수 있어. 그래서 점점 더 쓰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고.

 

: 독립영화 비평을 하면서 뿌듯했던 적 있으세요?

 

: 개인적인 기준인데, 나는 기질 상 작가론적인 방법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해. 특정 작품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은 곧 그 사람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다른 세계관을 갖는 사람이 특정 스타일을 차용하면 어설픈 흉내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오히려 초기에는 굉장히 그렇게 많이 썼어. 일종의 양비론적인 장점과 단점. 그런데 그게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대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욕하고 싶은 영화는 아예 쓰지 않게 되었던 것 같아. 내가 쓰고자 하는 영화들이 완전무결한 영화라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어떤 힘, 또는 그 힘의 맹아를 극대화해서 드러내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내 스타일이 남 욕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데에는 장점이 없어(웃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흔히 말하는 글 쓸 때 생각하는 상상적 독자가 있는데, 쓰다가 보면 일종의 감독에게 쓰는 편지 같은 글을 쓰고 있어. “당신은 결국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하는 거야. 가장 뿌듯할 때는, 실제 자기 영화에 대한 글을 보고 그런 부분에 대해 고마워할 때, 헛발질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지. 글 써봐서 알겠지만 읽어봤다는 사람이 있으면 좋다. 특히 감독들이 그렇게 얘기해주면 그런 느낌을 받곤 해.

 

: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전에 <아무도 꾸지 않은 꿈>에 대한 꽤 긴 글을 썼을 때, 그 글을 보고 좋아해주셨던 감독님 보면서 영화와 글로 소통해도 이렇게 깊은 것이 가능할 수가 있구나, 라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말씀해주신 부분이 꽤 오랜 시간 변성찬 선생님을 봐오면서도 궁금했던 점 중에 하나였어요. 영화나 감독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비판을 하는 글을 쓰기 보다는, 뭔가 늘 북돋워 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태도를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자주 가졌던 것 같고요.

 

: 그 부분은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독립영화는 개인적인 취향을 떠나서 얘기하자면, 예리하고 날선 비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문제인 것 같아. 때로는 욕을 해줘야겠단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욕도 안 하던 사람이 하면 잘 안 되나봐(웃음). 그래서 못하게 된 측면도 있는데, 그래도 귀가 예민한 사람이면 장점을 확대했을 때, 그 반대 측면에 대해 다시 읽어 줄 것을 기대하는 거고. 많은 감독들이 자기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불안감에 시달려요. 남의 평가에 대해 목말라하고. 특히 자신의 발전이나 다음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한계로서 지적되는 부분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그런 부분을 명료하게 정리해서 넘어가고 싶은 불안감이 있는데, 그걸 속 시원히 못해주는 아쉬움이 있어. 그럴수록 게으르면서 수사만 강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지. 감정만 상하고. 그런 폐해들이 사실은 있어.

특히 가장 위험한 순간은 특정 영화에 대해서, 비평적 행위 같은 것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똥파리><두 개의 문>, <지슬> 같이 소위 독립영화라고 일컬어지면서 일정정도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면, 여러 평자들이 비평적 행위를 하면서 대립구도가 생기고 거기에 대중들도 그것을 보게 돼. 이것은 한편으로 반가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논쟁이 진행 될수록 예리해지기 보다는 점점 투박하게 굳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는 우려가 있어. 내 식으로 보자면, 윤리적 감각이 섬세해지기 보다는 찬반이라는 구도 안에서 양쪽 다 특정한 도덕적 경화증으로 변질되거나 그렇게 소화되고 소비되는 경우가 많아서. 하다못해 <디워>논쟁 식으로 크게 떠들썩하게 논쟁이 생기고 나면 불편해지는 경우가 많아. 바르트식 표현을 쓰면, 어느 입장에서도 작은 고독을 느끼는.....

정리하면, 내 비평 방식은 단순히 마음이 약해서 욕을 못하는 게 아니고, 나름대로의 비평관이나 철학이 있으니까 그런 거고. 내가 또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닌데(웃음). 또 거꾸로 예리한, 비판적인 비평을 목말라하는 측면이 관객들에게도, 감독들에게도 있는 것 같아. 그건 누군가가 채우고 충족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알다시피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 그게 변성찬 선생님의 스타일인 것도 있지만, 비평가도 글을 쓰고 나서 그 대상이 된 감독을 만날 일이 생길 텐데. 영화제를 통해서든, 뒤풀이 자리에서든. 그렇게 만날 생각을 하면 비판적으로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마음을 먹고 써야하는. 또 한편으로는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라는 전제가 붙어서 다르게 보게 되는 부분들도 있는 것 같고요.

 

: 몇 년 동안 쓰면서 고민이 드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내가 독립영화 비평을 쓸 때 과연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해 쓰는 것과 같은 정도의 투자를 하면서 쓰고 있는 것인지, 또 그 사이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나갈지에 대한 거야. 또 하나는, 나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중적인 의미에서 온정주의적인 비평을 쓰게 되는 것이고. 주류의 힘 있는 영화 같은 경우에는 주례사 비평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역으로 독립영화니까하면서 저기다가 어떻게 돌을 던져? 하는, 온정주의적 태도가 있을 수 있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날이 서있지만 예민한 비평적 담론이 필요하고 절실한 것 같아. 굳이 논쟁을 위한 논쟁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게 고민이야. 그렇게 안 써봤기 때문에 써놓고 얼굴 붉히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맞고 틀리고의 문제나 받아들일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비판에 담겨있는 성의를 생각하면, 감독들이 그렇게 속이 좁은 경우는 별로 없어. 예민할 수는 있지만. 예민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런 경우 얘기가 나오기도 해. 그래도 설득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것 때문에 조심한다는 것은 일종의 게으름인 것 같아. 나는 그 작품을 만들 때는 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작가주의라고 할 때는 이중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해. 작가로서 자기의 화두에 매달리는 순간에는 자기에서 벗어나는 거지. 그렇게 되었을 때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야.

 

: 최근 제 큰 고민은 경제적인 부분이에요. 이게 독립영화 비평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글 쓰는 사람 전반의 이야기일 텐데. 제 주변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투잡이거든요. 이런 측면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가장 큰 부담이에요. 선생님도 한동안은 학원일과 병행을 하면서 영화비평을 하셨던 거죠?

 

: 학원 강사를 안 하기 시작한 게 5년 정도 돼. 정 급하면 방학 때 특강 나가서 하고 그랬었으니까. 독립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매체에 쓰면 돈이 나오지만 영화제 카탈로그는, 특히 인디다큐나 인디포럼은 써도 돈을 안 줘(웃음). 난 어떤 의미에서 준제도적인 라이선스, ‘등단이라는 제도를 거쳤기 때문에 그렇긴 한데, 프로그램 노트를 쓰는 등의 일은 무보수로 하고, 다른 방식의 일에서 버는 부분이 생겨. 예를 들면 독립영화 평을 쓰는 사람으로서 영진위의 심사위원 풀에 들어가는 거지. 영화 비평을 하면서 가장 짭짤한 건 심사인거 같애(웃음). 예심은 진짜 생노동 인데, 본선 심사는 노력대비 공돈 먹는 것 같아. 알다시피, 한독협에서 지원받은 게 거꾸로 돌아오는 부분이 있어. 씨네21에서 청탁 원고 쓸 때보다 독립영화평론가로서 들어오는 돈이 더 많은 거지. 그건 물론 라이선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나이가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 지금은 석사 학위도 없는데 영화수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 동일계열 7년 이상 경력이 있으면 가능하다더라고. 그러니 이렇게 하겠다고 계획하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학교 강의도 나가고. 기본적으로 영화평론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의 자세가, 있는 만큼 쓰고 없으면 안 쓴다는 거였어(웃음). 특히 미래에 대한 투자는 없어. 보험 다 깨먹고, 운명의 순간이 오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간다, 뭐 그런 거였어. 그렇게 철학으로 세워놓지 않고서는 시작할 수 없는 것이었지.

 

김주현(이하, ) : 무서운데요(웃음).

 

, : (웃음)

 


: 저는 석사를 갓 취득한 시점인 지금, 선생님이 40대에 등단하시면서 하셨던 생각과는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씩 글을 쓸 기회들이 생기는 데, 그런 것들로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기에는 요원해 보이고. 그래서 말로만이지만 취업준비도 하고는 있어요. 그런데 취업준비를 하려면 취업에 대한 마인드와 그에 맞는 노력들이 필요한데. 또 영화와 관련된 일을 구하기는 쉽지 않고요. 때문에 완전히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야 하고, 거기에서 오는 갈팡질팡함, 불안감 같은 것이 현재의 마음인 것 같아요.

 

: 내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순간은 군대 갔다 와서 였어. 군대 갔다 오니까 학적도 없고, 동료들도 감옥에 가 있거나 수배중이고,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때 이런 고민을 잠깐 한 적이 있어. 근데, 그것도 우리 시대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 학원 강사를 하면서는, 적게 벌지는 않았거든. 근데 또 악착같은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돈이 조금 모이면 툭툭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서, 역시 난 돈을 벌 팔자는 아니다 생각했지. 차라리 안 벌면 없는데 뭐 어쩔거냐, 하는 마음으로(웃음). 이것이 나를 위한 투자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한 친구가, 이제 네가 자유로워질 것 같다고 축하를 해줬어(웃음).

 

: 또 다른 고민은 저는 등단을 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데, 지면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나 독립영화를 위한 지면은 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 뒤집어 보면 계간 독립영화 1년에 한번 내고, 한독협만 놓고 얘기해도 쇼케이스 하면서 매달 두 번씩 필자를 구해야 하는데, 거기서는 오히려 필자가 없다고 고민해. 어차피 지금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씨네21>, 그리고 <매거진M> 정도긴 한데, 일간지도 상징적으로 주요한 소통의 공간으로서는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때문에, 특별히 독립영화의 지면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뭔가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늘 필자가 없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 독립영화 비평을 하는 데에 특별히 다른 자질이나 방법론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비평가를 하려면 자기 전문성이 확실하게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조영각이 2008년부터 나를 독립영화 쪽에서 일하게 하면서 반농담 삼아서 한 말이, 나는 독립영화가 키운 평론가라는 거야. 반은 맞는 말이지. 독립영화 전문 비평가 같은 이미지가 생기면서 그런 쪽에 일이 있으면 나를 찾게 됐고. 2012년 전주영화제의 중단편 섹션 예심을 했던 게, 씨네21 평론가로서 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이러한 방식으로, 독립영화 안에서도 더 세분해서 특정 주제나 특정 영화들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누구더라이런 근거지가 확실히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지. 지속적인 자기발전을 위해서도 자기 전문분야를 확실히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 그런 것이 없을 때 불안하고 다른 생각이 나는 것 아닌가 싶어. 당장은 안 들어오고 해도, 그런 것이 자기 안에 쌓이고 준비가 되어간다 싶으면. 요즘 책 내는 게 어렵나. 정 뭐 하면 그냥 내면 되는 거야.

 

: 요즘, 독립영화들이 개봉을 많이 하잖아요. 예전엔 영화제를 가야 독립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영화제를 거치지 않고 개봉하는 독립영화들도 많이 생기고 있어요. 어떻게 그 영역을 품어낼 수 있을지. 영화제는 오히려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가서 보게 되는데, 바로 개봉하는 독립영화들은 상영관이 잘 없고 그나마도 퐁당퐁당으로 상영되는 탓에, 생각보다 극장을 찾는 일이 힘든 것 같아요.

 

: 다 챙겨보지는 않지만 전주나 부산에서 튼 다음에 인디포럼 등을 거치지 않고 개봉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 같네. 그런 영화들의 지향 자체가 비독립영화라 생각하지는 않아. 어쨌든 경로가 또 하나 생긴 것이고, 그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이 섞여있지. 그런 영화들도 어차피 씨네21 같은 데는 고정적으로 한 달에 한 두 편인데, 요즘에는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 독립영화의 전문성에 대한 비평을 특정 영역으로 생각한다면 열심히 챙겨보고 블로그 등에 평을 쓰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특히 <논픽션 다이어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 , 그래도 대담인데(웃음). 혹시 뭐 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은 없으세요?


: (웃음) , 사실 내가 궁금하고 그랬던 걸 심경토로처럼 중간 중간에 해줘서. 주로 개인적인 전망과 관련한 질문이었어. 틀림없이 불안에 대한 고민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조언해 주자면, 그건 선택지가 많아서 오는 불안인 것 같아. 나이 들고 자연스레 선택지가 없으면 그렇게 불안하지는 않다(웃음). 어차피 이렇게 흘러온 인생인데,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가 되는 거지. 불안이 또 동력이 되는 거기도 하고.

 

: 한국 독립영화 비평의 역사 혹은 모델이 될 만한 선배분이 있으셨나요?

 

 : 독립영화비평의 모델이 있었던 것은 아니야. 단지 일반적으로, 누구나 그렇듯이 일단 국제적으로는 앙드레 바쟁과 들뢰즈가 있어. 들뢰즈는 삶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입장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베이스로 있고, 비평행위가 평가라기보다는 창조행위라는 나의 발상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아.

 

: 선생님께서 학생운동하고 활동하시고 할 때도 동시대의 독립영화나 그런 게 있었잖아요.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으셨나요?

 

: ‘얄라셩같은 경우에도 존재 자체를 모르다가 4학년 때인가, 알았어. ‘얄라셩의 창립 멤버들이 나보다 조금 선배들, 70년대 말 학번들일 텐데. 공대 중심이었기 때문에 존재도 몰랐어.

 

: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학생운동, 사회운동을 해 오신 삶의 경험이 독립영화 비평을 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이 있을 것 같아요.


: 아무래도 있지. 내가 직접 선택을 한 것은 아니지만. 90년대 중반에 활동을 접고, 먹고사는 것만 했으니까. 2008년에 인디포럼에 갔는데, 나는 사라진 줄 알았던 80년대 문화가 아직도 여기에 살아있네, 라는 생각이 들었어. 대다수의 사람이 그 해만 하고 안 해준다 해도 상관이 없는 건데. 뭐 하면 맨날 뒤풀이 하고, 술 먹고. (웃음) 이송희일 감독은 나이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윤성호, 곡사, 이런 친구들은 나이도 굉장히 어린데 저 세대에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사는 인간들이 있구나, 하면서 반가웠지. 꼭 활동가 마인드의 연장 같은 것은 아니지만, 영향을 안 받았다 할 수는 없고. 다른 영화제, 큰 영화제들 가서 뒤풀이 가면 내 자리는 어딘가싶고, 사교모임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독립영화 뒤풀이는 가면 다 비슷비슷한 고민들 하고 사니까 편하기도 하고. 근데 그런 것하고 비평가로서 영화를 대하는 것에 대한 구분은 확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

 

: 개인적인 계획이나 하고 계신 작업이 있는지 궁금해요.

 

: 외부에서 계약금을 받고 10년째 안 쓰고 있는 것이 있어.(웃음) 들뢰즈의 시네마에 대한 대중적 주석서인데. 이걸 어떻게 쓸까 하다가 최근에 내린 결론은 처음 쓰는 것으로는 대중적 주석서를 만들자는 거였어. 오히려 시네마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적 질문들을 몇 가지 설정하고, 한 편 한 편이 독립된 아티클이 될 수 있는 글을 구상하고 있어. 예컨대 영화 이미지와 베르그송적 이미지를 겹치는 것이 영화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거나, 작가의 의미라든가. 키워드를 10개 정도 뽑아서 영화책으로 확장하고 싶은 생각이 있지. 그리고 또 하나는 독립영화 감독들의 감독론을 쓰고 싶어. 나머지 하나는 빨리 들뢰즈를 벗어나서, 바타유, 바르트, 아르토 같은. 요즘은 점점 아방가르드한 쪽에 관심이 많이 가서. 형식적인 전위성과 미학적인 전위성이라는 것이 윤리적 전위성, 정치적 전위성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부분을 정리하고 싶어. 어떨 때는 영화냐, 소설이냐, 연극이냐 보다는 장르를 불문하고 주류와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차이가 더 크잖아. 같은 아방가르드라면 장르를 넘어서는 혹은 횡단하는 친연성이 있다고 생각해. 그런 관심의 연장에서, 더 확대하는 의미에서 블랑쇼나 아르토라든지. 내가 늘 이야기하는 예술의 정치, 미학의 정치와 관련해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 들뢰즈 밖에 없어서 이를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 독립영화 비행에 쓰신 비평 모아서 비평집 내시면 안돼요?

 

: 유운성이랑 만나면 늘 하는 얘긴데, 그런 거 내는 사람들은 진짜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 말해. 옛날 글 보면 민망해서 못 보겠는데, 그걸 책으로 낼 생각을 하다니(웃음). 아마도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면 나는 다시 다 뜯어고칠 성격이야(웃음).

 

: 인디다큐페스티발 어땠는지 이야기해주셨으면 해요. 올해는 아니었지만 작년에 인디포럼에 대한 남다은 평론가의 총평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 대한 경향을 듣고 싶어요.

 

: 장편이 상대적으로 강세였어. 38편이 장편, 나머지 70편이 단편이었는데. 단편에서는 뭘 고르지하는 생각이 들었어. 반면 장편 쪽에서는 경쟁이 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데 독보적인 작품이 있다기보다는, 일정한 수준,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작품 군이 두터웠던 것 같아. 올해는 공간 다큐멘터리 포럼을 주제로 하다 보니 출품작도 그런 것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고. 오히려 그래서 적극적으로 선별하지 못한 것 같아. 여기서 특정 작품을 거론하기는 어렵고. 어쨌든 근본적으로는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영화가 보이지. 그런 고민이 없는 순수한 영화를 보면, 왜 출품했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고민이 담겨 있는 영화들, 특히나 형식적으로, 그런 영화들을 주로 내가 관심 있어 하고, 선호하는 것 같아. 그건 현재적 경향이 있다는 게 아니라, 내 관심사에 따라 판단되는 거지. 사실 요즘 경향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워. 남다은이 쓴 얘기는 수년전부터 심사위원들이 공유했던 이야기를 답답해서 까버린 거였어. 결정적으로 남다은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극단편들에 대한 이야기고. 대학교 졸업 작품들에 대한.

 

: 정리하는 질문으로, 어떻게 하면 독립영화에 대한 비평과 담론이 더 활성화 될 수 있을까요?

 

: 상대적으로 양적으로 활발하지 않다거나 한 건 아닌 것 같아. 씨네21에 실리는 빈도가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거고. 오히려 지금은 점점 와이드 릴리즈 되는 매체는 없고, 매체는 다양해지고 있는데 거기에 필자들이 부족한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 수요와 공급이 반대인거지. 뒤집어 얘기하면,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열심히 쓰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 독립영화 비평이 양적으로 활발해지는 것 이전에 독립영화에 대해 썼던 영화적 비평적 글들의 문화적 지위, 질적인 수준을 높이는 것이 더 긴급한 문제인 것 같아. 그만한 글들이 생산되지 않으면, 누구도 독립영화를 그렇게 보지 않듯이 독립영화 비평문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거지. 독립영화 전체가, 미학적 측면에서 아직 그것은 작품이 아니라는 식의 게으른 전제 같은 것이 있는 건데. 결론이 있다기보다는 그게 굳어져있는 통념이 되면 안 된다는 거야. 그 통념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비평가라고 생각해. 비평가들이 기존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생각에 대한 재점검이나 반성이 없는 것이, 나를 포함해서 가장 문제인 것 같아.

 

: 근데 이거 정리는 어떻게 하냐(웃음).

 

, : (웃음) □

 




필자소개 권은혜

- 대학원에서 독립다큐멘터리로 논문을 썼고, 최근 한독협 비평분과의 회원이 되었다. 영화 곁에 머물며 먹고 살 길을 모색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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