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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9호 길라잡이] 벌써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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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8. 5. 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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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9호 길라잡이 2018.05.30.]


벌써 일 년


성상민(ACT! 편집위원)



  벌써, 일 년이다. 2017년 5월 9일, 장미꽃이 피는 봄과 함께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쌓여온 권위주의적 보수 정권에 대한 환멸과 불신은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무척이나 높였다. 특히 미디어 운동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기대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이후 새롭게 꾸려진 영화진흥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철저히 자신들의 이득에 대변되는 사업만을 실시했다. 자신들의 이득에 부합하지 않은 사업은 소외되거나 외면 받았다. 지난 9년 간 공동체 라디오, 미디어센터, 독립 영화-다큐멘터리 활동가, 퍼블릭 액세스 운동가 등이 겪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새로운 정부의 출범은 곧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길과도 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지 일 년이 지났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해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청자미디어재단 등 미디어 정책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의 수장과 임원들이 전부 새 정부의 코드에 맞는 인사로 교체되었다. 개중에는 꾸준히 미디어 운동 영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2016년 말엽 실체가 드러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결성된 진상조사위원회가 오랜 기간 조사를 한 끝에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미디어 운동을 비롯한 문화 전 영역에 가한 부당한 간섭을 수면 위로 드러내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다뤘다는 이유로 각종 지원 정책에서 소외되던 독립 영화-다큐멘터리 활동가들은 정부가 교체되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받기 어려웠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허나 바로 ‘태평성대’가 도래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1W의 낮은 출력에 묶여 자신들이 위치한 지역에도 제대로 전파를 쏘지 못하는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정책은 여전히 제대로 확정된 것이 없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지난 9년간 블랙리스트로 부당히 창작자들을 배제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고, 2010년 미디액트를 지원에서 배제한 이후 영진위 차원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던 ‘서울영상미디어센터’를 근시일내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전히 영진위는 권위적이며 관료적인 조직 운영과 정책 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블랙리스트가 발표된 이후에도 여전히 블랙리스트 연루 인사를 고위직에 등용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모습은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의심케 만들었다.

  물론 첫 술에 바로 배가 부를 수는 없다. 아직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4년이나 남았다. 지금 당장 무언가 바뀌지 못했다고 해서 완전히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기에는 이른 시기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여전히 이전 정부의 자세를 답습하는 자세가 계속 비치는 장면들은 많은 이들에게 불안감과 당혹감을 심기에 딱 좋다. 장기적으로는 정부에 대한 신뢰도 잃을 수 있다.

 

 

▲ 지난 4월 4일, 영화진흥위원회 오석근 위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자행되었던 영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디어 영역의 적폐는, 그리고 문화예술계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모순은 단순히 정부를 교체하고, 인물을 갈아치운다고 끝날 문제가 애초에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어젠다를 제시할 준비는 되어 있는 것일까. 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압도적인 실책, 현 정권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율에만 취해 있다가는 ‘벌써 일 년’은 ‘그저 그런 오 년’이 되기 쉽다. 최저임금 개악안에 담긴 근시안적 시각과 오만함이 미디어 영역을 비롯한 문화, 예술 영역에 담기지 않기만을 빌 따름이다.



  이번 ACT! 109호는 과거를 반추하며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글들로 가득 담겨 있다. 이슈와 현장에서는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영상미디어센터 공모가 낳은 일련의 사단과 최근 논란이 된 https 차단 정책을 들여다본다. 다양한 미디어 기구의 다짐을 들었던 108호에 이어 109호에서는 각 지역별 미디어센터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ITVS와 호주 4EB FM의 사례는 자연스레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의 미디어 정책을 고민하게 만들 것이다. 각각 춘천과 부산에서 활동하는 일시정지시네마와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마을미디어연구소, 그리고 다큐싶다의 이야기는 지역에서 미디어 운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지지 않을까.

   서울독립영화제나 인디다큐페스티발,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매년 찾았던 관객들이라면 어렴풋이 기억할 김선민 프로 자원활동가의 이야기에는 위트와 함께 영화제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공동의 기억 : 트라우마>에 참여한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의 오지수, 장민경 활동가의 인터뷰에는 그간 쉽게 인지하기 어려웠던 액티비즘 미디어 활동의 다단한 모습들이 드러난다. 최근 온라인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생각 많은 둘째 언니>의 진행자 장혜영 씨와의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 미디어 인터뷰도 큰 울림을 낳을 것이다.

  여기에 오랜 시간 후속편이 나오지 못했던 조민석 전 편집위원의 ‘우리 곁의 영화’도 109호에서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110호에 에필로그가 게재된다면 길고 긴 연재가 마침내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는 셈이다. 허나 아쉽게도 주일 전 편집위원이 담당하던 학습소설은 이번에는 실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호에는 알차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109호와 함께 지난 일 년을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나날들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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