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7호 Me,Dear 2017.11.22.]

     

    “두부 가게는 두부 가게라고 말하는”


    차한비 (ACT! 편집위원)

     

    가을이다. 달라진 계절을 몸이 알아차리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며칠 사이 장염과 감기몸살과 두드러기를 차례차례 앓았다. 병원에 갔지만 돌아오는 진단은 엇비슷했다. 면역력 저하, 체력 저하. 때문에 처방도 같았다. 적당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 기침은 멈추지 않고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따끔거렸다. 간지러운 양 무릎을 문지르면서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 골라 입은 외투들이 그새 두꺼워진 바람에 전철 안은 항상 자리가 비좁았다.

     

    쨍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뜬금없이, 그러나 마침 적절한 타이밍으로 두 개의 이름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오즈 야스지로. 결혼이나 취직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과 같은 극히 일상적인 이야기가 ‘사건’이 되는 그의 영화에는 유난히 계절이 잘 담긴다. 날씨를 묻고 날씨에 답하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스크린 속 세계와 내가 속한 세계의 속도가 일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매일 조금씩 흘러가는, 어느 순간 돌아보면 아주 멀리까지 와 있는 삶의 기묘한 리듬.

     

      나이가 들어 오즈 씨는 아주 익살스러운 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아츠다 자네, 활동사진이 어렵게 되면 난 돈가스 가게 할 테니까. 자네는 돈가스 배달원이 되는 거야. 나한테로 오게.”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이, 아츠다 자네, 사치스러운 말 안 돼.” “왜요?” “감동했어.” “뭐가요?” “영화에 나오는 양말 보고 감동했어.” 따라서 오즈 씨는 세세한 것까지 보고 있었지요. 그래서 제삼자들에게는 “저 자는 좋은 것만 찍는다.”는 말을 듣곤 했지요. 그건 이렇게 말하는 인간의 기분의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것 아닐까요. (..) “나는 고전은 싫으니까 시작을 안 하는 거야. 멜로드라마의 원세트가 아니면 그런 것은 안 되지. 그러므로 나는 두부 가게는 두부 가게라고 말하는 거야.” 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형태를 바꾸면 역시 오즈 상점의 등록 상표라는 것은 이런 것이죠. 그것이 새로운 것인지 구식인지 하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따라서 저는 지금 감동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얘기한 대로 “아니, 우선 내 영화 같은 것을 외국인들은 알지 못할 테고 그건 무리는 아니지만 꼭 알게 될 거야, 일본 사람들은 앉아 있다는 걸. 그 성격에는 이런 포지션이 맞다는 것을 알아줄 거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하스미 시게히코, <감독 오즈 야스지로>, 아츠다 유하루 인터뷰에서.

     

    오즈 야스지로와 평생을 함께 한 촬영감독 아츠다 유하루는 위와 같이 회고한다. 두부 가게는 두부 가게라고 말하는 사람, 일본인은 앉아 있으며 때문에 카메라의 위치는 낮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 오즈 야스지로는 자신의 예순 번째 생일에 죽었다. “어려워지면 나한테로 오”라던 이가 먼저 떠나고, 아츠다 유하루는 그이의 말을 상기한다.

     

    두 번째 이름은 장 르누아르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들이었고 영화에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담아내는 데에 탁월했다. 르누아르는 저서 <나의 사랑 나의 영화>에서 피에르 상파뉴를 기억한다. 그만이 가졌던 비상한 능력과, 그와의 우정에서만 가능했던 특별한 순간을.

     

      그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나나>에서 속물 신사인 라 팔루아즈 역을 맡든, <물의 소녀>에서 난폭한 농부인 쥐스텡 그레푸아 역을 맡든, 그는 언제나 피에르 상파뉴였다. 이렇게 변신을 거부하는 것은 플롯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그가 화면에 나타나기만 하면, 마치 다른 이야기를 보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이것을 개의치 않았다. 나는 드라마의 모든 법칙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내게 중요했던 일은 얼굴을 단지 그 자체만을 위해서 재현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피에르는 거의 나만큼이나 영화를 사랑했다. 이 공통된 열정은, 마약 중독자들이나 어떤 종파의 개종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강한 결속을 우리 사이에 만들어 주었다. 영화와 자동차에 대한 사랑은 단지 추상적인 열정밖에 될 수 없으므로, 피에르는 그 열정들을 나에 대한 사랑을 통해 구체화시켰다. 나에 대한 그의 애착은 절대적이었다.
      4반세기 뒤 인도에서 <강>을 찍을 때, 나는 비슷한 종류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 나라에 대해 그토록 깊은 애착을 가지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우정”이란 단어는 인도에 적합하지 않다. 대신 “사랑”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든지 아니면 미워할 뿐이다. 인도식 우정은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친구의 존재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 반면에 서양식 우정은 종종 어떤 형태로든지 주고받음을 바탕으로 한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사업에 유용하거나, 아니면 재미난 이야기꾼이거나, 아니면 단순히 그가 존경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에서는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그것은 물리적 욕구로서, 마치 친화감을 느끼는 두 사람 사이에 일종의 무선 체계가 존재하여, 우리의 수학적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교신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피에르 상파뉴가 바로 그러한 능력을 가졌다. 그는 가끔 찾아와 내 옆에 앉곤 했다.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마치 가을 태양 빛이나 바다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즐기듯 서로의 존재를 즐기곤 했다.

    - 장 르누아르, <나의 인생 나의 영화>에서.

     

    가을 햇살이나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듯 서로의 존재를 즐겼다고 회상하는 이 고백은 언제 다시 읽어보아도 아름답다. 오즈 야스지로와 장 르누아르. 이렇게 커다란 이름들을 떠올리고 생각하고 돌아보는 것은 특히 요즘처럼 몸 이곳저곳이 고장 난 상태일 때 꽤 도움이 된다. 그들의 이름과 그들이 남긴 얼굴들, 장면들, 영화들은 시간이 너무 더디게 혹은 너무 급하게 흘러갈 때 적절히 속도를 맞춰준다. 떠나서 그리운 만큼, 남아서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

     

    아직 가을이라고 우기는 쪽과 벌써 겨울이라며 엄살을 떠는 쪽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한다. 그러는 사이 한 해가 ‘끝’에 달하는 것이 하루하루 눈에 보이는 듯하다. 올해 곁을 떠난 사람이 너무 많다. 한 사람이어도 그것은 ‘너무’였을 텐데 한 사람만이 아니라서, 지금 당장에라도 소리 내어 이름을 부르고, 간직하고 있는 추억들 꺼내어놓고 싶은 사람이 여럿이어서, 쨍한 햇빛이 벅차다.

     

    지난 주말, 친구들 덕분에 마음 같지 않은 몸을 이끌고 서해에 다녀왔다. 때마침 붉게 넘어가는 해와 그 아래위로 펼쳐진 바다와 하늘 보며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채도는 낮고 밀도는 높아서, 이맘때 서해 바다는 파도가 유독 무겁고 느리게 느껴진다. 그 앞에서 올해 영영 떠난 사람들을 천천히 떠올렸다. 큰 숨을 뱉고 뒤를 돌아보자 저 멀리서 친구 한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 곁에 좀 더 자주 머물러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츠다 유하루와 피에르 상파뉴가 그랬던 것처럼. 두부 가게는 두부 가게라고 말하는 사람의 옆을 찾아가서 계절을 즐기듯 그를 즐기겠다고. ■

     

    ▲ ACT! 107호 Me,Dear (ⓒ차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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