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6호 특별기획 박종필을 기억하며 2017.9.14]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권우정(다큐이야기, 다큐멘터리 감독)



    # 선배의 죽음은 영화처럼 담백할 수 없었다. 


      잘 살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다운 죽음은 무엇일까? 

      한때 웰다잉이라는 화두 속에 주요하게 이목을 끌었던 해외 다큐멘터리 <엔딩노트>가 생각난다. 감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을 정리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어떠한 극적인 감정의 실타래 없이 참으로 담백하게 아버지의 임종을 담아냈다. 그 담백함이 내심 생경스러우면서도 은근히 부러움을 남겼던, 인간다운 죽음에 대해 나에게 주요한 질문을 던진 영화였다.


      그리고

      종필 선배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다시금 <엔딩노트>가 불현듯 기억났다.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영화 속 주인공의 엔딩이 예견되어 있었다면 선배의 엔딩은 그에게나 지켜본 우리에게나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그래서 선배의 죽음은 영화처럼 결코 담백해질 수가 없었다. 그것이 직면하기 싫은 지금 이 순간에도 컴퓨터 앞에서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을 정리하려고 애쓰는 이유일 듯 싶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그를 기억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비치는 선배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박종필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참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만나는 대상에 따라 그의 색깔을 달리했던 것 같다.


    # 이상한 놈, 나쁜 놈, 그리고 좋은 놈 


      나에게 있어 그는 

      이상한 놈, 나쁜 놈 …… 그리고 좋은 놈이었다. 

      2000년 갓 대학을 졸업한 내가 미디어 활동가라는 이상과 포부를 안고 처음으로 독립영화계의 문을 두드린 곳이 바로 다큐인이었다. 기대했던 감독과의 만남에서 나에 대한 선배의 첫 질문은 미디어 활동가로서의 포부도 아니요 다큐멘터리에 대한 감독으로서의 조언도 아니었다.

      “운전면허증은 있니?” 

      스물세 살 나에게 운전면허증이 있냐고 물어봤던 그는 매우 이상한 놈이었다. 

      지방을 오고가며 이어지는 촬영(당시 그는 <끝없는 싸움 ― 에바다>의 후속 촬영과 <버스를 타자>를 기획중이었다)에 잠시나마 운전대를 놓을 수 있도록 나에게 영상 활동가가 아니라 운전기사를 기대한, 내 눈에는 아주 나쁜 놈이었다.

      사람이 계속 욕을 먹으면 두 가지 선택이 남는다. 더럽다고 떠나거나 아니면 오기를 가장한 ‘버티기’ 작전이다. 


    # 그를 통해 다큐 ‘인’ 했다 


      그에게만은 헬퍼가 아니라 제대로 된 미디어 작업자로 인정받고 싶어 뭐든지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심지어 6mm 테이프 라벨 하나도 그에 지지 않게 깔끔하게 붙이고 싶어 수차례 스티커를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박종필의 눈으로 장애인과 빈민의 이야기를 대표하는 다큐인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농민들의 이야기도 담아내는 좀 더 확장된 다큐인을 만들고 싶었다. 

      <농가일기>라는 첫 영화를 만들기까지, 수많은 모니터와 악평 속에서 일곱 번째 시사를 마쳤을 때에서야 그에게서 ‘오케이’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내 스스로가 다큐 영역에 ‘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봤을 때 나는 유독 그에게만은 인정받고 싶어했다. 왜 그랬을까? 

      순간순간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고 속으로 무지무지 욕을 했지만, 긴 시간 가까이서 지켜본 지나칠 정도의 고집과 이상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뚝심과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무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손목에 힘줄이 나갈 정도로 긴 시간 주인공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던 인간 트라이포드였던 그.

      대상자에 대한 무한 애정과 신뢰는 질투가 나면서도 내심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했기에 그 누구보다 그에게 인정받을 때만이 비로소 ‘내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초짜감독에게 기성 감독들의 다양한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수차례의 시사회로 바쁜 감독들에게 연락하고 자리를 만들어 낸 것도 바로 그의 물밑 작업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첫 외주를 맡았던 영상 작업에서 연출을 맡았을 때 ‘갑질’을 하던 외주 작업자에게 미숙한 내가 수차례 사과를 했던 자리에도 그가 옆에 있었다. 수차례 미안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인 나를 대신해 그가 갑질에 화를 내며 나를 데리고 나왔다. 그는 나에게 무지 화를 냈었다. 왜 자꾸 미안하다고 하냐고 그럴 필요 없다고. 그때 그의 분노는 참으로 고마웠다. 


      사람은 누구나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지만 그만큼 나에게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생각되는 이는 드물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 내 신경을 건드리는 아주 이상한 놈이었다가 다큐인을 그만둘 때 한 번도 붙잡지 않던 나쁜 놈이었다가도 결론적으로 현실의 많은 흔들림 속에서도 아직까지 내가 다큐 ‘인’할 수 있게 해준 좋은 놈이었다. 

      긴 시간 내 옆을 스쳐간 다양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들에게 나는 종필 선배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문득 문득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까? 


    ▲ 2011년 3월 1일 서울 중구 시청 인근에서 박종필 감독



      그와 참으로 많이 싸웠던 거 같은데 돌이켜 그를 생각해 보면 화내고 찡그렸던 그의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나고 간간이 보여주던 환한 웃음만 생각난다 

      부끄러운 듯 가려진 그의 커다란 손, 저 단단한 손 뒤로 그는 환하게 입 끝을 올리며 크게 웃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그와의 이별로 불뚝불뚝 섭섭함과 슬픔이 올라오다가도 그의 웃음을 기억하며 나도 그를 따라 웃어본다. 

      ‘그래 웃자 웃어. 선배처럼. 화내고 때로는 진상을 부려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마지막에는 좋은 사람으로 남으면 되겠지? 그렇지 선배?’

      그게 잘 살아가는 거겠지? 담백한 엔딩은 아니었어도 선배는 참 잘 살았네 그랴~ 




    글쓴이 권우정



    2000년 대학 졸업 후 우연한 기회로 민주언론시민연합 VJ 과정을 듣게 되었다. 과정에서 만난 <다큐인>과 인연이 되어 자연스럽게 독립 다큐멘터리 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귀농한 한 가족의 일상을 다룬 <농가일기>가 나의 첫 작품이 되었고 이후 <농가일기>로 맺어진 인연과 고민을 발전시켜 세 명의 여성농민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땅의 여자>도 3년여의 제작 기간을 통해 완성하게 된다. 농촌 이야기 3부작으로 사라지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다루려 했으나, 갑작스런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을 때, 아이가 가져온 내 삶의 극적 변화와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자 다시 카메라를 들고 현재 <까치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