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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6호 특별기획] 배웅을 위한 자세 - 넝쿨(연분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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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6호 특별기획  박종필을 기억하며  2017.9.14]


배웅을 위한 자세 

박종필 감독님을 보내드리며


넝쿨(연분홍치마 활동가)



감독님은 지금 뭐 하고 계실까?


  어쩐지 어디에선가 김치찌개에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 것만 같다. 사실 나와 박종필 감독님과 인연은 그리 길지도, 깊지도 않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왠지 소문으로 박종필 감독님을 알고 있었고, 감독님에게 나는 어떤 영화제의 뒤풀이였을지, 어떤 투쟁의 현장이었을지 스치며 마주친 수많은 후배 활동가들 중 한 명이었을 것 같다. 원칙주의자에 깐깐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감독님과 술자리다운 술자리를 갖고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것도 올해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박근혜정권퇴진행동 미디어팀 활동을 하면서 조금 더 자주 뵐 수 있었고, 조금 더 술을 마실 기회가 생겼다.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자주 마주치고 친해질 법도 했건만, 기회는 별로 많지 않았고, 있었다 해도 감독님은 어쩐지 꼰대 같을 것 같고 왠지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렸다. 진중히 얼굴을 마주볼 수 있었던 올해 겨울의 어느 술자리에서 날카롭지만 어쩐지 따뜻한 말로 다독여주시기에 ‘엇, 예상과는 좀 다른 사람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속으로만 미안해 했었다. 감독님의 활동 궤적을 생각해보면 그런 날카로움과 따뜻함이 자연스러운데, 왜 나는 감독님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을까? 어쩌면 깐깐해 보이는 그 표정이 내 속을 들여다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모자란 내 마음을 들킬 것 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감독님과 변변한 일화 하나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걸까 좀 망설여졌다. 친한 사람들, 잘 알고 있는 사람들만 추모의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송구하달까 민망하달까. 그래도 감독님께 얻었던 한마디 말의 빚으로 글을 쓴다. 



‘걸리는 사람’


  아마도 어떤 현장에서 ‘저 사람을 찍어야겠다’라고 생각해서 박종필 감독님을 찍은 경우는 그 누구라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어떤 투쟁의 현장, 치열한 현장에 서 있는 모습 때문에, 대부분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담게 되고, 그들을 찍는 사람들은 잘 찍지 않게 됐을 것이다. 그래서 박종필 감독님의 추모 영상에는, 다른 추모 영상들과 달리 감독님을 ‘찍었다’기 보다는 감독님이 카메라에 우연히 ‘걸렸다’고 느껴지는 컷이 많다. 장례식장 한 켠에서 울음을 꾹꾹 참으며 감독님이 등장하는 컷을 하나라도 건지려고 애썼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이 간다. 왜 이렇게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을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도 집요하게 찍었으면서 감독님 얼굴 한 컷 제대로 찍은 게 없을까 가슴을 쳤을 것만 같다. 아마도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의 얼굴은 항상 그런 식이지 않을까 싶다. 현장 한 켠에서 ‘걸리는’ 사람,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 얼굴은 잘 안 보이는 사람. 그래서 남아 있는 감독님의 영상 한 컷, 사진 한 장이 매우 소중하다. 


  찍는 사람은 찍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공권력과 혐오세력에 대치하며 함께 싸우고 있어도,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재미로 찍은 사진 한두 장을 보거나, 우연히 ‘걸린’ 사진을 보고, 그리고 ‘이거 누가 찍었더라?’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야 당시에 함께 있었던 현장의 카메라들이 새삼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슨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라는 아이러니도 있다. 아마 박종필 감독님은 수도 없이 ‘긴급한 전화’를 받아보셨을 것 같다. ‘무슨 일이 터졌어, 지금 당장 와줘’ 라는 말 한마디면 밥 먹던 젓가락도 던지고 뛰쳐나가야 하셨을 것이다. 수많은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어쩐지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것 같은 사람, 그리고 오래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


  사실 박종필 감독님과의 일화는 연분홍치마에서 함께 활동하는 김일란 감독을 통해서 듣곤 했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투닥거리거나, 함께 어려움을 겪어나갔던 이야기들을 간혹 전해 들으면 까탈스러운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소탈하고 다정한 묘한 균형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감독님과는 직접 대화하거나, 직접 뭔가를 함께 한다기보다, 이런 식으로 성품이나 에피소드를 전해 듣는 일이 더 많았는데, 올해 겨울을 지나면서는 앞으로 오래 만나게 될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날은 ‘나 요리 잘해’라며 연분홍치마에 오셔서 닭도리탕이며 생선구이를 해주시기도 하시고,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함께 준비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시기도 하셨었다. 이렇게 천천히 일상을 이어나가면, 더 오랜 시간 박종필이라는 사람을 알아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연분홍치마’ 식구들과 함께한 박종필 감독. 



  오랫동안 계속 만나게 되겠지 싶었던 마음은 황망히 뒤집혔다. 김일란 감독이 위암 판정을 받고 연분홍치마 활동가들이 모두 침울해져 수술을 앞두고 다 같이 여름휴가를 가자고 마음먹고 강릉에 갔을 때, 박종필 감독님의 투병 소식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투병소식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결국 만나지 못하게 되려나 싶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호스피스병원에 계신 감독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상상했던 모습이 아닌 감독님의 모습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눈물부터 터져나왔다. 감독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후회되는 일이 많이 떠올랐다. 좀 더 많이 감사하다고 말씀드릴걸, 감독님 말씀 좀 잘 들을걸, 좀 더 빨리 먼저 가까이 다가갈걸…… ‘또 올게요’라는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감독님을 보내드려야 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박종필 감독님을 생각할 때 그가 부재하다는 것을 전제로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더 묻고 싶은 것이 생겨도 그의 작품이나 인터뷰나 글 같은, 생전의 흔적을 찾아서 답을 스스로 알아내야만 할 것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과정은 그 사람을 더 잘 기억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 같다. 오는 9월 14일에는 마석 모란공원 묘소에서 박종필 감독님의 49재 추모행사가 있고, 독립영화 전용관에서는 14일(목)부터 17일(일)까지 추모영화제도 열린다. 잘 기억하는 것, 그래서 잘 애도하고 떠나보냄과 동시에 내 삶의 곁에 그의 자리를 남겨두는 것이 어쩌면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싶다. 어쩐지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것 같은, 그리고 오래 떠올리게 될 것 같은 사람, 박종필 감독님을 보내드리며…… 




글쓴이 넝쿨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을 하던 마을에서 미디어활동을 시작으로 운동에 눈을 떴다. 미디어운동과 인권운동, 다큐멘터리 사이를 고민하다 현재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하고 있다. 바쁜척하며 살지만 천성이 게으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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