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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6호 특별기획] 박종필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10년 - 장호경(영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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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6호 특별기획 박종필을 기억하며 2017.9.14]


박종필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10년


장호경 (영상활동가)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10년 


  올해는 한국 사회 진보적 장애인 운동을 이끌어 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10년이 되는 해다. 올 해 초, 나는 전장연으로부터 전장연 10년을 기념하는 영상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다. 전장연의 역사를 다루는 작업을 하는데 나 혼자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박종필을 빼고 어찌 이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전장연에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종필이 형과 상의해봐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형이 요즘 세월호 작업으로 바쁘다던데 여름 쯤 되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영상 작업은 장애인 운동과 박종필로부터 시작됐다. 2001년 우연히 노들장애인야학을 찍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있는데 그 작업의 조연출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당시 나는 카메라도 한번 들어본 적 없었을 때였는데 선뜻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종필이 형을 만나게 되었고, <버스를 타자>와 <노들바람>의 작업을 함께했다. 2년여간 조연출을 하며 내가 했던 일은 형을 따라 촬영 현장을 다니고 촬영본 녹취를 하는 일이었다. 정작 영상 제작과 관련한 것은 별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다. 


  그것은 바로 자기 현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 자신과 나의 카메라를 신뢰해주는 현장, 그리고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기록할 현장.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신뢰는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너머에서 만들어진다는 것도 배웠다. 박종필의 카메라는 굉장히 차갑다. 개입도 별로 없고, 현장에 너무 몰입하여 흔들리는 일도 별로 없다. 차분하고 담담하다. 그러나 카메라 뒤의 박종필은 그렇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장애인들과 함께 경찰이나 공무원들과 싸우기도 하고, 사무실에서는 그렇게나 말이 없고 무뚝뚝했지만 현장에서는 말도 잘 하고, 웃기도 잘 하고, 화도 잘 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 일상을 공유하고 기록하는 것. 나도 그런 작업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나는 빈곤사회연대라는 빈곤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 기록하는 사람들 


  9월 5일, 전장연 10주년 행사를 앞두고 작업에 쓸 영상자료들을 가지러 다큐인 사무실에 들렀다. 다큐인 사무실 다락방 한쪽 벽면이 모두 장애인 관련 촬영본들이었다. 2001년부터 쌓여온 오랜만에 보는 DV테이프들. 처음에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중요한 날짜들의 테이프들만 받아올 생각이었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테이프들을 보고 가슴이 무너졌다. 날짜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이동권, 석암재단, 활동보조 등 꼼꼼히 기록된 테이프 라벨들을 읽고 있으니 “반성해야 돼. 정말 반성해야 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정말 쉼 없이 찍었구나. 이대로 두는 것이 너무 아까워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던 거의 모든 테이프들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방 한가득 테이프들을 늘어놓고 하나하나 꺼내서 보기 시작했다. 우와 전장연 00가 이때도 활동을 하고 있었구나. 첫 만남이 생각나지 않던 한 활동가의 젊은 시절도 보이고. 지금은 돌아가신 우동민 열사나 김주영 동지의 화사한 얼굴도 보인다. 그리고 돌아가신 숲속 홍길동, 지금은 현장을 떠난 많은 영상 활동가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의 모습도 보이고 아주 가끔 종필이 형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다다른 질문 하나. 집회 한번 하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나왔었는데. 지금은 왜 이리 사람이 없을까…… 떠난 사연은 많아지고 있는데 새롭게 현장으로 들어오는 사연들은 별로 없다. 그리고 이제는 종필이 형도 없다. 



# 거의 모든 순간들 


  전장연에서 9월 5일 상영할 영상에 대한 콘티가 왔다. 전장연 시기별로 여섯 개의 클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맨 마지막 순서에 상영될 동영상 끝부분에 “박종필 고마워요”라는 자막을 넣어달란다. 전장연에게 아니 진보적 장애인 운동에서 박종필의 존재는 그러하다. 고마운 존재. 과연 무엇이 고마운 걸까? 사실 많은 활동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맨날 싸운 기억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슬픈 거야”식의 이야기다. 나조차도 그렇다. 형이랑 뭔가 함께할 일이 있으면 항상 합이 잘 안 맞아서 내 성격상 맞서 싸우지는 못해도 뒤로는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너무 슬픈 거다. 그것은 아마도 부재가 주는 슬픔 같은 게 아닐까 싶다. 항상 여기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그런 것 말이다. 장애인 운동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늘 있던 사람이,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것. 함께 있는지도 몰랐다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함께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역설. 그래서 더욱 고마운. 그런 것이 아닐까. 이것은 20년 동안 이어진 형의 활동이 만들어낸 결과다. 다락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던 테이프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 쓰인 그림이든, 그렇지 않은 그림이든, 장애인 운동의 거의 모든 순간들이 그 테이프 속에 들어 있었다. 


 

▲ 전장연 활동가들과 박종필 감독.



# 유산 


  전장연 10주년 작업의 목표를 하나 세웠다. 그것은 바로 다큐인의 자료를 최대한 많이 활용해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다큐인에서 그 많은 양의 테이프들을 옮기면서 너무 욕심을 내는 것 같기도 했지만, 거기에 그냥 놓아두기에는 너무 아까워 바깥바람이라도 좀 쐬라는 심정으로 들고 왔다. 그런데 테이프들을 보다 보니 그대로 두는 것은 종필이 형에게도 전장연에도 모두 손해인 것 같아 작업에 쓰이진 않더라도 중요한 자료는 캡처를 해 전장연에도 주고, 다큐인에도 주마 했다. 


  종필이 형이 떠나고 많은 사람들이 박종필에 대한 추억과 공과, 그리고 영상 활동가로서의 삶에 대해 말과 글을 통해 풀어놓았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 많은 양의 촬영본들이 영상 활동가로서의 박종필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기록의 힘이 빛을 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묵묵하게 이어온 거대한 기록. 그리고 그 기록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게 나의 활동을, 동료들의 활동을 현장에서 잘 보듬어가고 싶다. 




글쓴이 장호경



2001년 <버스를 타자> 조연출로 영상 작업을 시작했다.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며 장애, 빈곤을 주제로 작업해 왔다. <다시, 봄>, <빈곤의 얼굴들 1, 3>,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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