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106호 특별기획] 바람이 분다 - 주현숙(다큐멘터리 감독)

본문


[ACT! 106호 특별기획 박종필을 기억하며 2017.9.14]


바람이 분다


주현숙(다큐멘터리 감독)



  원고 제안을 받아들여 놓고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현실만 있었다. 그러다 몇 장면이 떠올랐다. 


  # 10년 정도 된 일이다. 빨래를 개며 무심히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울컥해버렸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도 아니고 이제 막 이야기가 시작되는 초반이었다.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야기다. 위기에 처한 핸드볼팀을 위해 감독대행으로 온 혜경(김정은 분)이 예전 자신의 라이벌이자 최고의 선수인 미숙(문소리 분)을 찾아오는 장면이었다. 미숙은 소속 팀이 해체되고 생계를 위해 마트에서 일하고 있었다. 미숙의 일이  끝나길 기다리다 마트 밖에서 만난 혜경은 다시 같이 뛰어 보자고 손을 내민다. 미숙은 어림도 없는 일이란 듯 거절하지만 이내 팀에 합류한다. 흔한 미션영화의 당연히 있어야 할 장면이다. 그런데 그 장면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무슨 이유에서든 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때, 돌아갈 수 있을까 수없이 질문하며 절망할 때, 그렇게 손을 내밀며 찾아와 주는 동료가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덜 외로웠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삐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가을밤이었다. 한창 작업하다 육아 때문에 적극적으로 작업할 수 없을 때였다. 어두운 밤만큼이나 막막한 시기였다. 한창 걷고 있는데 박종필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을 함께해주지 않겠냐고.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란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함께, 그래도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 덕을 보았는데 덕 본 값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작업할 수 없는 시기에 다큐멘터리를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고 공동체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박종필 감독의 제안이 무거우면서도 고마웠다. 


  # 그리고 어느 날, 한국독립영화협의회의 다큐멘터리 분과 회의였다. 뜨거운 논의는 회의실 공기마저 뜨겁게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분과장이 인디다큐페스티발의 당연직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조직 구성으로도 긴밀했지만 다양한 논의들이 활발히 이뤄지던 시기였다. 당시 가장 뜨거운 논의는 영화제 입장료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에는 입장료를 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때는 영화제 입장료가 한동안 무료였다. 그 논의를 이끈 사람이 박종필 감독이다. 누구든 영화를 통장 잔고와는 상관없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한국에서 독립다큐멘터리는 사회변혁운동의 연대 활동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입장료를 받든 안 받든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료를 선택하는 이유가 꽤 매력 있었다. 돈에 상관없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에 평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참인 내가 몰랐을 뿐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는 여러 분화를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화들이 일부 영화제 입장료 무료와 관련해 드러났다. 열정적인 시기였다. 그만큼 활발한 논의를 진행했지만 매끄럽지는 못했다. 박종필 감독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그의 직설적인 화법에 고개를 젓는 감독도 있었다. 신참인 나는 박종필 감독을 괴팍하다고 놀렸지만 그 선택이 매력적이고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지 자못 궁금했다. 박종필 감독은 자신의 말과 생각에 책임을 졌다. 사회단체를 돌며 설득해 후원을 받아 왔고 영화제를 치러냈다. 그리고 꼭 다음해의 영화제를 위한 운영비를 마련해 놓았다. 영화제 규모가 작아서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립다큐멘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과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신참 감독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 작년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작업하던 영화를 편집하던 시기였다. 것도 아주 막막한 시기였다. 주인공과 만들어 놓은 이야기가 주인공들을 해친다는 이야기를 일부에서 듣고 있었다. 산책을 핑계 삼아 박종필 감독 사무실로 향했다. 박종필 감독은 내겐 질투의 대상이었다. 좋은 주인공들 덕분에 좋은 영화를 찍고 있다고 늘 질투했다. 박종필 감독도 그 말에 동의했다. 주인공들 덕분에 다큐를 계속 만들 수 있었다고 선선히 동의했다. 하지만 그 말은 노숙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 주인공을 잃으며 가득했던 상실과 분노를 경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많은 시간을 나누며 다른 이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그는 적임자였다. 막막한 마음이 들었을 때 그를 선뜻 찾아 나선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날 박종필 감독을 만나지 못했다. 


  # 지난 7월, 한 통의 전화로 박종필 감독의 상황을 알았다. 화가 났다.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 면회도 자유롭게 못할 때였다. 면회 시기만 기다리며 성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투병 중 곁을 지키던 송윤혁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식이 있을 때 나를 보고 싶어 하셨다고, 지금 의식은 없지만 만나 보시겠냐고. 한밤중에 차를 얻어 타고 새벽에 강릉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내가 질투했던 선배가 없었다. 기력이 다한 한 생명이 있었다. 앞에 있는데도 상실이 느껴졌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걸까? 나는 박종필 감독에게 들려줄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모른다. 


  #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전 담당하시는 분이 ‘이번에는 예산이 적어서 죄송하다. 첫 사업이니 이번에 잘해서 내년에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셨다. 좋은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실제 실무자들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것도 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미 많은 부분 조정하며 마음을 써주셨던 분이다. 다 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선생님, 내년은 없어요. 내년에 제가 살아 있으란 보장이 있을까요?” 되물었다. 극단적인 사람이 되었다. 


  # 박종필 감독이 어떻게 살았는지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은 안다. 그들도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시간을 쪼개 제작하고 생활하고 활동하고 알바하며 살아간다. 늘 그랬지만 지난 10년은 아이디어와 활동까지 쪼그라들었다. 그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나의 희생과 더불어 다른 이의 희생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자신이 무섭다. 이제는 개인의 선의가 아닌 시스템이 만드는 환경을 만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당분간은 좀 뾰족해지기로 했다. 


▲ 2017년 5월 목포로 내려가기 전 작업실에 잠시 들른 박종필 감독.



  # 지난 5월 박종필 감독이 나의 작업실에 들렀다. 인양된 세월호를 촬영하러 가는 길에 장비를 챙기러 온 거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옥상에서 길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촬영해뒀다. 사진을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박종필 감독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 이제 답은 내가 찾아야 한다. 바람이 분다. 




글쓴이 주현숙



다큐로 세상이 바뀔 거라 여전히 기대하며 다큐를 만들고 있다. 최근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 참여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