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4호 길라잡이 2017.07.14]


    다시 만난 세계


    차한비 (ACT! 편집위원회)


    <런던 프라이드>는 1984년 영국의 광산 노조 파업 투쟁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대처 정부의 광산 폐쇄 정책에 저항하는 광부들의 투쟁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폭력과 난동으로 보도됩니다. 우연히 TV에서 이 소식을 접한 ‘마크’라는 청년은 퀴어 퍼레이드에서 광산 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모금 활동을 벌입니다. 이른바 LGSM, 광부들을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들(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의 시작입니다. 마크는 게이이자 수완 좋은 활동가이며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어떤 식으로 ‘폭력과 난동’이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마크의 친구들조차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째서 우리가 그들을 지지해야 하느냐고 묻지요.


    (사진설명) <런던 프라이드>(매튜 워처스, 2014)


    광부와 동성애자. 언뜻 보면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적은 싸워서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교묘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의 투쟁은 발밑에 보란 듯이 침을 뱉는 호모포비아나 아무런 설명 없이 동료를 끌고 가는 경찰과만 싸우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그 모든 부당과 공포를 포함해서 그들이 진짜로 대면하고 있는 적은 ‘힘’입니다. 그들에게는 없고 상대에게는 있는 것. 권력의 힘, 편견의 힘, 외면의 힘. 그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는 힘의 세계에서 그들은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이길 수 없다고 해도 멈추어서는 안 되므로 기꺼이 서로의 손을 잡습니다.


    (사진설명) 2017 제9회 대구퀴어문화축제 포스터


    지난 6월 24일, 대구 동성로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졌습니다. 길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머리 위로 무지개 깃발이 펄럭였습니다. 올해로 아홉 번째 열리는 대구퀴어문화축제는 “혐오와 차별을 넘겨라”라는 슬로건을 증명하듯 우렁찬 노랫소리로 들썩였습니다. 손을 흔들며 행진하는 시민들 아주 가까이에는 그들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도 퀴어문화축제가 이달 7월 14일(금)부터 시작됩니다. 제18회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입니다.


    2017년 올해 상반기는 말의 잔혹함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2월,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바로세우기 7차 포럼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성이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 인권을 질의하자 문 대통령은 나중에 말할 기회를 드리겠다며 만류했습니다. 이후 객석에 앉아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중에”를 연호하기 시작했습니다. 4월에도 ‘나중에’의 시간은 되풀이되었습니다. 대선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문 대통령에게 동성애 관련 질문을 내리 던지자, 문 대통령은 동성애에 ‘반대’하며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사진설명) 2017 제18회 퀴어문화축제 포스터


    ‘나중에’라는 여지는 여지없음으로 가득 찬 말이었습니다. 눈이 질끈 감기는 악몽 같은 순간이었고, 어떤 누군가는 그날 그 장면으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설 만큼 공포와 절망을 깊이 맞닥뜨려야 했을 것입니다. ‘반대’는 그 자체로 배척을 의미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권력과 편견과 외면의 힘으로 공고한 세계를 목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므로 멈추지 않습니다. 손을 잡고 높이 들어올려 흔들 작정입니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지난 6월 30일, 독일은 동성 결혼을 합법화 했습니다.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동성 부부의 자녀 입양과 재산 상속 등 모든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는 이 법안은 찬성 393표, 반대 226표, 기권 4표로 통과되었습니다. 4와 226이라는 숫자가 무겁게 느껴지는 만큼 393이라는 수에 담긴 무게는 더욱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묵직합니다. 독일은 동성 결혼을 합법화 한 23번째 나라입니다.


    *  *  *


    ACT! 104호 ‘이슈와 현장’에는 세 편의 글을 싣습니다. 처음은 광화문 세월호 광장으로 갑니다. 지난 계절, 촛불을 밝히고 함성을 외친 시민들로 가득했던 광장을 기록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광장>과 <모든 날이 촛불>이 관객과 만난 상영회 현장을 방문하여 기록한 글입니다. 다음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발전기금 설명회에 참석한 최은정 편집위원이 당일 오갔던 논의와 비판을 정리하고 독립영화계와 독립영화 활동가들의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 글은 얼마 전 작고한 김선민 감독을 기억하며 그와 마지막 작업을 함께 한 백종관 감독이 보내왔습니다. 김선민 감독과의 첫 만남부터 그의 작품 세계와 작업 여정을 추억하는, 그리움으로 눌러쓴 소중한 글입니다.


    ‘인터뷰’에서는 페미니즘 미디어를 시리즈로 다룹니다. 이번에는 ‘페미위키’ 운영진을 만나 여성주의적 기록에 대해 묻고 답하며 페미위키와 미디어운동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해서 고민해봅니다. ‘인터내셔널’에서는 호주 공동체 라디오 현황을 전합니다. 호주 공동체 방송국 연합에서 공개한 인포그래픽을 통해 보다 쉽게 현황을 이해하고 한국의 공동체 라디오와 비교 분석해보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리뷰’에서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를 히어로 영화와 비교하며 승리의 주인공들을 발굴하는 흥미로운 리뷰와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한 <유령의 도시>를 통해 공동체 미디어 제작의 의미를 차분히 조명하는 리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작지만 큰 영화제’에서는 공익법센터 어필(APIL)의 윤지수 님을 통해 난민영화제를, 부산어린이어깨동무 사무국의 황예지 님을 통해 부산평화영화제를 찾아갑니다. ‘나의 미교이야기’는 강릉에서 고등학생 학교미디어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유민아 미디어교육 교사의 현장감 있는 후기로 전합니다. 학생들과의 소통에서부터 지역 미디어센터의 한계까지 꼼꼼히 다루고 있습니다. ‘학습소설’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人이 없는 전쟁 2부를 연재하고 ‘우리 곁의 영화’에서는 제작과정, 내러티브, 이미지, 사운드를 거쳐 드디어 편집을 다룹니다. ‘미, 디어’는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발행하는 비평지 『독립영화』 읽기 세미나를 진행한 권은혜 편집위원의 글입니다. “독립영화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진중하게, 그리고 이전보다는 좀 더 든든하고 활기찬 마음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더위와 습기로 숨 막힐 듯한 여름의 한가운데에 와 있습니다. ACT!도 더디지만 여기 도착해서 104호를 내보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만나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시 만난 세계에서 만날 날까지요. 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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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