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4호 우리 곁의 영화 2017.07.14]



    영화의 최종병기 - 편집 (1)
    : 데쿠파주와 리액션



    조민석(<The Secret Principle of Things>, <춤>)

     


    편집에 이르러 영화는 비로소 자신의 실체를 갖게 됩니다. 하나의 단상에서 시작된 영화는 사건을 가진 이야기로 펼쳐집니다. 그렇게 펼쳐진 이야기는 영화의 형식에 맞춰 시나리오로 옮겨집니다. 시나리오는 다시 스토리보드로 옮겨지지만, 스토리보드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영화는 쇼트와 편집을 거쳐 실제의 영화가 됩니다. 이때 가상의 영화와 실제의 영화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가상의 영화 또는 상상의 영화에 비하면 실제의 영화는 불완전한 영화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영화가 가진 고유한 성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 불완전한 실체를 가졌을 때에야 비로소 영화로 인정된다는 점입니다. 가상의 영화가 실제의 영화에 종속되어있는 꼴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상의 영화와 실제의 영화를 아예 다른 것으로 보기도 하고, 가상의 영화를 지워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실제성, 현상성, 우연성에 무게가 실려있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두 차례에 걸쳐 영화의 실제적 구성요소의 마지막, 편집을 살펴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데쿠파주decoupage, 다음 시간에는 몽타주montage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몽타주는 익숙해도, 데쿠파주는 처음 듣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몽타주는 두 개 이상의 것을 하나로 조합하는 작업, 데쿠파주는 하나를 여러 개로 나누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비에트 몽타주와 할리우드식 데쿠파주가 각각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이며 소비에트 몽타주를 가시적 편집, 할리우드식 데쿠파주를 비가시적 편집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할리우드식 데쿠파주는 1930년대에 체계화되어 오늘날까지도 적용되고 있는 전 세계적 표준 규범으로, 일반적으로 ‘고전적 편집’이라 부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미국식 또는 할리우드식 몽타주라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할리우드식 데쿠파주라고 말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할리우드식 몽타주라고 쓰이는 편입니다. 하나의 편집 양식에 두 개의 편집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 데쿠파주와 몽타주의 경계가 모호하고, 몽타주에 비해 데쿠파주는 설명하기 간단치 않은데다가 워낙 다양한 경우에 쓰이기 때문에 몽타주에 비해 언급되지 않는 듯합니다. 데쿠파주는 이야기를 쇼트 구성으로 옮기는 쇼트화 작업, 즉 나누는 쪽에 가깝고, 몽타주는 쇼트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조직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편집 작업, 즉 모으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으고 나누는 것은 ‘하나’를 두고 일어나는 작업이므로 결국 둘은 맞물려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할리우드 데쿠파주와 할리우드 몽타주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쇼트라는 개념은 클로즈업을 발견함으로써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쇼트 이전에는 타블로tableau라는 단위가 있었습니다. 타블로는 연극의 무대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연극에서는 막이 여닫힘으로써 시공간이 바뀌고, 그에 따라 그곳에서 펼쳐지는 상황도 달라집니다. 씬scene은 그렇게 나뉘어집니다. 쇼트를 단위로 이야기하면 오늘날의 영화는 한 씬이 여러 쇼트로 이루어지지만, 타블로 영화는 한 씬 또는 한 타블로가 하나의 쇼트로 이루어졌습니다. 쇼트가 등장함으로써 한 씬은 여러 개의 쇼트로 조각나게 됩니다. 한 씬이 여러 개의 쇼트로 조각나는 것, 이것 역시 제가 오늘 집중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하는 데쿠파주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데쿠파주는 쇼트와 함께 생겨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쇼트(이미지와 사운드) 역시 편집을 염두에 두고 구성됩니다. 하나의 쇼트는 다른 쇼트와의 연관 속에서 있을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의미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딥 포커스deep focus, 시퀀스 쇼트plan-sequence와 같은 현대 영화와 묶여있는 개념은 잠시 제쳐두기로 합시다. 오늘은 할리우드식 데쿠파주를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데쿠파주

    데쿠파주는 본래 공예에서 쓰이는 장식기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가구나 소품 등의 표면에 종이를 오려 붙여 그림을 새기는 작업으로 목재뿐만 아니라 도기나 유리 제품에도 쓰입니다. 영화용어 역시 마찬가지의 공정을 가리킵니다. ‘조각내기’에 방점이 있습니다. 미셸 마리Michel Marie와 노엘 버치Noel Burch의 설명을 보겠습니다.



    “‘절단하다, 썰다, 오려내다’의 뜻을 가진 데쿠페decouper의 명사형. 영화 전문 용어로 시나리오의 최종 단계에서 촬영에 필요한 모든 기술적 지시 및 정보를 기록한 문서를 가리킨다. 이러한 1차적 의미만 보면 영어권 영화 용어인 콘티continuity와 같다. 하지만 대개의 프랑스 영화 관련 서적에서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사전에 숏과 시퀀스로 나누는 작업[결과](2차적 의미), 그리고 편집이 다 끝나 완성된 영화의 내부적인 분절 구조(3차적 의미) 등 다층적 의미로 사용된다.”



       촬영 현장에서 쓰이는 스토리보드와 스크립트 페이퍼를 프랑스에서는 데쿠파주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2차적 의미, 3차적 의미에서는 일반적인 영화용어로 쓰입니다. 제작자가 스토리보드를 작성하기 위해 “영화의 시나리오를 사전에 숏과 시퀀스로 나누는 작업”, 즉 ‘가상의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가리킬 때(2차적 의미), 감상자가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제작자의 데쿠파주를 복기할 때(3차적 의미) 그것을 데쿠파주라 합니다. 2차적 의미와 3차적 의미는 누가 어느 단계에서 하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데쿠파주의 과정이 영화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그렇게 인식한 것을 다시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이는 인간의 의식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과정입니다. ‘사랑’에 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랑’이라는 관념, 더 나아가 ‘사랑’이라는 이상理想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내면 또는 너머의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개념화된 언어로 가리키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 그 자체를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단편들만을 마주하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사랑에 관해 인식하고 말한다는 건 그 단편들로써 사랑 자체를 분해하고 재조직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데쿠파주는 영화에 대해서 일어나는 이러한 분해와 재조직 과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체의 의미는 데꾸빠쥬에 의해서 분할된다. 이 분할은 필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단지 정신적 이미지에 불과한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단순한 대화로 텍스트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거야”라고. 하지만 이것은 주체가 개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이 지닌 정체성의 일부일 뿐이다. 실제의 사랑은 현상 안에 존재하며, 상황 안에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는 현상적으로 이 사랑을 재조명 하고자 또다른 텍스트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사랑’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김성태의 『‘영화’-존재의 이해를 위해여』 4장 데쿠파주 부분입니다. 사랑으로부터 가장 완전하고도 숭고한 의미를 찾다가 사랑이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 답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희생하는 사랑’을 영화로 만들어봅시다. ‘a는 b를 사랑했다. a의 사랑은 아주 커서 b의 세계 전체를 뒤덮을 정도였다. b는 a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이야기 단계에서는 문제될 게 없는 서술입니다. 그러나 영화화하기에는 불완전한 서술입니다. 이 이야기는 시공간에서 상황과 행위로 펼쳐지는 구체적인 사건들로, 즉 내러티브로 그리고 시나리오로 옮겨져야 합니다.



    “그래서 ‘희생하는 사랑’은 그 개념 또는 의미를 드러낼 수 있을 만한 것들로, 즉 현상적인 상황들이나 행위들로 분할된다. 그러나 이 분할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전체(‘희생하는 사랑’)를 부분들로 나눈 조각이다. 이것들이 결합되고 재통합됨으로써 현상들의 덩어리인 작품으로 태어난다. 의미나 개념에 불과했던 ‘사랑’이 결국 상황을 덧입은 ‘사랑’, 현상으로 나타난 ‘사랑’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데쿠파주는 아직 개념적 차원에 있는 내러티브, 시나리오를 쇼트 단위로 분할·재조직하는 작업을 가리킵니다. 쇼트 단위로 분할한다고 할 때, 이 분할은 쇼트들 간의 관계를 고려한, 쇼트들이 묶여-이렇게 묶는 것이 몽타주입니다-다시 하나가 된 상태를 상정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데쿠파주와 몽타주는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몇 차례 말씀드렸다시피 이 단계에서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물론 데쿠파주는 제작과정을 거치는 동안 끊임없이 재구성되기도 하며, 몽타주는 쇼트가 현상적 실체를 가질 때에야 본격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데쿠파주-몽타주는 작품마다 고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연출력이란 사전적事前的 데쿠파주-몽타주를 구성하는 능력부터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수들-현실적 한계, 우연적 계기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조정해서 다시 완결성을 가진 데쿠파주-몽타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적 데쿠파주-씬Scene 

    영화제작에 막대한 제작비를 투여하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감독들의 불균등한 연출력을 통제하고 작업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제작공정을 세분화하고 조직화합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은 20년대에 자리 잡기 시작해, 유성영화의 등장 이후 30년대 중반에는 할리우드식 데쿠파주-몽타주를 완전히 체계화시키는 단계에 이릅니다. 데쿠파주는 연속성의 규칙들을 지키는 비가시적 편집이란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는 할리우드식 데쿠파주를 말하는 것으로 한국의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문법”이라 부르곤 하는 규범화된 씬 구성 방식을 의미합니다. 할리우드식 데쿠파주 또는 ‘고전적 편집’은 바로 이 규범화된 씬 구성 방식에서 집약됩니다.

     

     

       쇼트 사이즈를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볼프강 가스트의  『영화』 2장 쇼트 부분입니다. 이미지 시간에 말씀드렸던 사이즈 구별은 한 사람이 기준이었으나 지금 보시는 사이즈 구별은 상황이 기준입니다. 상황이 기준이 됨으로써 사이즈 설명은 씬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사이즈는 크게 앙상블 쇼트, 미디엄 쇼트, 클로즈 쇼트로 나뉘어 있는데 시공간 설정, 상황 전달, 중심인물들의 행위, 주인공의 감정적 반응 순으로 점차 좁아지는 구조입니다. 시공간 설정은 극단적 롱 쇼트와 앙상블 쇼트에서, 상황 전달은 앙상블 쇼트와 세미 앙상블 쇼트에서, 중심인물들의 행위는 세미 앙상블 쇼트와 미디엄 쇼트, 아메리칸 쇼트에서, 주인공의 감정적 반응은 클로즈 쇼트와 클로즈업 쇼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이즈와 묶여 상황에서 인물로 좁아지는 구조. 이것이 ‘고전적 편집’에서의 씬 구성 방식입니다. 이때 쇼트들 간에는 연속성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관습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영화’는 극작술 기반의 내러티브와 이와 같은 씬 구조를 가진 영화라 할 수 있는데, 이 씬은 연속성의 장치들이 적용된 씬입니다. 연속성을 구축하는 데쿠파주인 것입니다. 스토리보드를 ‘콘티’continuity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데쿠파주를 연속편집이라 부릅니다. 연속편집은 편집점이 눈에 띠지 않기 때문에 소비에트식 몽타주와 비교하여 비가시적 편집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한 씬 안에서 연속성의 규칙들을 지키며 쇼트들을 구성하는 것만을 데쿠파주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내재음향의 동일함도 연속성을 구축하는 장치들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연속성을 구축하는 장치들 중 설정 쇼트establishing shot와 마스터 쇼트master shot, 쇼트-역쇼트shot-reverse shot에서의 180도 가상선과 시선 매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설정 쇼트와 마스터 쇼트를 구별해보겠습니다. 주로 씬의 도입부에 배치되는 설정 쇼트는 관객들에게 두 가지를 전달합니다. 볼프강 가스트의 사이즈 예시를 다시 보겠습니다. 극단적 롱 쇼트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를 말해줍니다. 앙상블 쇼트에서는 장소의 성격과 분위기가 전달됩니다. 여기까지는 시공간 설정입니다. 세미 앙상블 쇼트와 미디엄 쇼트에서는 사건의 중심 구도와 양상, 사건에 가담하고 있는 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시공간으로 관객들을 데려다주는 것, 그곳에서 벌어지는 중심 상황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이끄는 것, 이 두 가지가 설정 쇼트의 주요 기능입니다.
       마스터 쇼트는 커버리지coverage 촬영에서 쓰이는 단위입니다. 마스터 쇼트와 커버리지 쇼트들을 찍는 촬영 방식을 커버리지 촬영이라 합니다. 마스터 쇼트는 하나의 씬 또는 하나의 상황을 한 번에 찍는 쇼트로 중심 상황이 다 들어오는 사이즈로 촬영됩니다. 사이즈를 좁혀서 다양한 각도로 같은 내용을 촬영하면 그것들을 편집 단계에서 조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쇼트들을 커버리지 쇼트라 합니다. 커버리지 촬영의 대표적인 예가 대화 장면입니다. 마주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미디엄 쇼트로 보여주고, 대화를 주고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클로즈 쇼트로 보여줍니다. 이 같은 쇼트 구성은 닳도록 보셨을 겁니다. 두 사람을 보여주는 미디엄 쇼트는 마스터 쇼트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여주는 클로즈 쇼트는 커버리지 쇼트로 촬영됩니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은 예외가 없을 정도로 커버리지 방식으로 촬영됩니다.
       이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오명>을 보면서 설정 쇼트와 마스터 쇼트를 구별해보겠습니다. 데블린(캐리 그랜트)과 알리샤(잉그리드 버그만)가 브라질 리우에 도착했습니다. 리우에서의 첫 대화 장면입니다.

     

     

       중심가를 보여주는 쇼트에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데블린과 알리샤가 보이는 쇼트까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데블린과 알리샤의 단독 쇼트로 이어집니다. 설정 쇼트와 마스터 쇼트가 구별되십니까? 알리샤의 말소리가 들리기 전까지가 설정 쇼트입니다. 알리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상황이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제시되므로 여기서부터 마스터 쇼트가 됩니다.
       설정 쇼트들에서의 연속성과 대화 쇼트들에서의 연속성을 확인해봅시다. 데블린과 알리샤가 보이는 마지막 설정 쇼트는 스튜디오 촬영본이지만 앞의 쇼트들은 로케이션 촬영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시공간으로 인지합니다. 연속성이 구축된 것입니다. 세부로 집중하는 가운데 디졸브, 내재음향의 동일함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대화 쇼트들은 두 인물이 보이는 투 쇼트, 쇼트-역쇼트의 단독 쇼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인물이 보이는 투 쇼트는 마스터 쇼트, 쇼트-역쇼트의 단독 쇼트들은 커버리지 쇼트로 촬영되었을 것입니다. 쇼트-역쇼트에서의 연속성은 180도 가상선을 바탕으로 구축됩니다. 180도 가상선이란 서로를 향하고 있는 두 인물의 시선을 따라 그은 가상선으로, 그 선을 기준으로 카메라와 가상선 간에 180도의 반경이 설정되기 때문에 180도 가상선이라 합니다. 카메라는 이 180도 가상선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이 180도 선을 넘어가면 배경과 인물의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인물 뒤의 배경이 달라지면 관객들의 공간 인지에 순간적으로 혼선이 생기고 연속성뿐만 아니라 비가시성도 깨지게 됩니다.

     

     

       알리샤의 쇼트를 뒤집었습니다. 알리샤의 시선도 화면의 오른쪽을 향합니다.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데블린의 왼쪽 뒤편에 있으면 이런 구도가 됩니다. 180도 선을 넘은 것입니다.
       180도 선은 연속편집의 핵심 틀입니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 장면만이 아니라 연속편집에서의 공간 설정에 행동축axis of action으로써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180도 선입니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관습이긴 해도 180도 선이 공간 구축의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오즈 야스지로도 유명하지만 고전기 할리우드의 감독인 존 포드 역시 180도 선을 비웃듯이 넘나들곤 했습니다.



     리액션

    다시 알리샤와 데블린의 대화 장면을 보겠습니다. 알리샤가 데블린에게 금주를 자랑합니다. 데블린이 인정해주지 않자 알리샤는 데블린을 비꼽니다. 데블린도 독설을 그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돌을 던집니다. 결국 알리샤는 보란 듯이 술을 주문합니다. 이 씬은 알리샤가 데블린에게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 데블린이 알리샤에 대한 마음을 감추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리샤와 데블린이 서로를 향해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이 씬의 목적입니다.
       또한 씬은 씬마다 주인공이 있습니다. 전체 이야기의 주인공과 씬의 주인공이 늘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전체 이야기의 주인공과 씬의 주인공이 같습니다. 이 씬의 주인공은 알리샤입니다. 알리샤의 감정이 이 씬을 매듭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씬은 상황에서 인물로 점차 좁아지는 구조를 가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씬은 설정 쇼트, 마스터 쇼트: 상황(액션) 그리고 리액션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씬에는 목적과 주인공이 있는데 씬의 목적은 어떤 정보가 제시되는지를 통해, 씬의 주인공은 누가 결정적 리액션을 가져가느냐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씬의 결정적 리액션은 알리샤가 가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리샤가 주인공입니다. 이 씬의 첫 클로즈업 쇼트도 알리샤가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하워드 혹스의 <엘 도라도> 보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이 씬은 총상을 입은 떠돌이 총잡이 콜 손튼(존 웨인)이 갑자기 마을을 떠나기로 했음을 알려주는 씬입니다.

     

     

       보안관 보조 불이 나팔을 불며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디(샬린 홀트)가 불의 나팔소리를 받아줌으로써 연속성이 구축되고 있습니다. 보안관 제이피(로버트 미첨)에게 불의 나팔 연주에 대해 묻습니다. 자연스럽게 불의 연주곡으로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의사가 불에게 무슨 곡인지 묻자 오늘밤 마을을 떠나는 콜 손튼의 환송곡이라고 합니다. 유난스러운 불의 나팔소리로 관심을 집중시킨 뒤 불로부터 콜이 떠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내러티브 정보는 이렇게 상황과 행위 속에서 제시됩니다.

     

     

     

       불이 프레임 밖으로 나가면서 모디의 단독 쇼트가 되었습니다. 팔을 떨구는 동작이 모디의 심정을 말해줍니다. 리액션 쇼트입니다. 어렵지 않게 이 씬의 주인공이 모디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디의 단독 쇼트는 이 씬의 유일한 단독 쇼트입니다. 이 씬의 목적은 콜이 떠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이 씬의 주인공은 콜이 떠난다는 사실에 감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모디입니다. 이러한 감정적 반응은 다시 인물의 행위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다음 상황, 즉 다음 씬으로 넘어가는 동기가 됩니다.
       이처럼 고전적 편집에서의 씬 데쿠파주는 결정적 리액션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결정적 리액션을 가져가는 이에게 단독 쇼트나 클로즈업 쇼트를 할애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그에게, 그의 감정에 집중하게 됩니다. 결정적 리액션이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내러티브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관객은 그가 자신이 처해 있는 처지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감정이입을 한다.” 자신의 경험과 추론에 기대 그의 의식과 감정을 파악하고 자기화하는 작업입니다.
       영화는 인간의 의식과 감정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든 그려냅니다. 초자연적인 힘, 인간 세계를 규율할 뿐만 아니라 우주마저 관장하는 듯한 초월적 질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모든 인류가 떠올릴 수 있는 이상, 이런 것들 마저 자기 안으로 가져옵니다. 기이하게도 영화가 이러한 것들을 그려내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영화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인식이 대상을 파악하고, 그렇게 파악한 것을 자신의 의식으로 가져와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기화하는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영화도 그런 것들을 그려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린 넓은 의미에서의 데쿠파주 역시 우리의 이러한 인식활동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개념적 차원에서 내러티브를 쇼트로 나누는 작업인 데쿠파주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렇게 나누어진 쇼트들을 다시 모으는 작업인 몽타주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 <이창>(알프레드 히치콕, 1954)

     

     



    '우리 곁의 영화'는 아래와 같이 진행되며, 강의를 옮긴 글임을 밝혀둡니다.


    개요
    1. 알아도 써먹지 못하는 - 제작과정
    2. 무엇이 우리를 영화 앞에 붙들어 놓는가 - 내러티브 장치
    3. 신비로움을 구축하는 전략 - 영상과 소리
    4. 영화의 최종 병기 - 편집

     



    [필자소개] 조민석 (ACT! 객원 필자)



    2012년 여름부터 ACT!와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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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