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101호 작지만 큰 영화제] '노동을 잊은 그대'에게 :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 시작과 다음

전체 기사보기/작지만 큰 영화제

by acteditor 2016. 12. 22. 16:54

본문


[ACT! 101호 작지만 큰 영화제 2016.12.23]


‘노동을 잊은 그대’에게 

-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 시작과 다음


서대문구근로자복지센터 영화제기획팀


[편집자 주] 연말입니다. 어느덧 날씨는 무척이나 쌀쌀해졌습니다. 하지만 추운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을 더욱 춥게 만드는 것이 주변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래저래 사회가 뒤숭숭한 가운데 여전히 돌아보는 이를 찾아보기 힘든 소수자의 권리 역시 찬 거리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이번 ‘작지만 큰 영화제’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말하는 영화제를 찾아 나섰습니다. 두 영화제 모두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열기는 어느 영화제 못지않게 뜨거운데요. 지자체 산하 기관이 여는 최초의 노동 주제 영화제인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의 이야기가 참 흥미롭습니다.







왜 노동인권영화제인가


 관객이 얼마나 올까. 본격적인 영화제를 시작한지 3년차지만, 우리는 늘 마음을 졸인다. ‘노동’은 우리 사회에서 인기가 없으니까. 우리는 노동을 통해 일상의 밥을 먹고, 관계를 형성하고, 내일을 준비하고, 색다른 꿈을 꾼다. 그렇지만 노동은 늘 숨겨진다. 노동 없이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을 펑펑 쓰는 것이 능력 있는 것이라 평가되는 사회에 살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 불행한 사람, 무능한 사람, 못배운 사람, 가난한 사람이라는 희한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사회를 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노동인권을 내걸은 영화제는 인기가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마음을 졸인다. 


 노동이라는 주제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슬프다. 노동자들의 상황이 그렇기 때문이다. 아프고 슬픈 것을 일부러 돌아보고 그것을 함께 고민해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인식 개선’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접근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기도 하고, 노동이 처한 현장의 상황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라 생각되었다. 그 결과는 기대했던 것보다 강력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지고 콧물을 훌쩍인다. 아프고 힘든 노동인권의 현실을 텍스트로 설명하거나, 강력한 연설을 하지 않고도 제한된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고 초대한 손님들을 통해 우리가 함께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었다. 







노동인권으로 가는 ‘영화’라는 통로


 사실 우리는 좀 헤맸다.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지역에서 나눈다는 건 왠지 우회로를 타야할 것만 같았다. 게다가 서대문구 조례로 설치된 기관에서 하는 일이니 너무 노골적인 문제인식은 어렵지 않겠냐는 자기검열에 시달렸다. 그래서 첫 영화제는 진로탐색 영화제라는 테마를 선정했다. 결과는 본래 ‘노동’이라는 주제를 공개적으로 꺼내놓고 이야기하기에 ‘진로’는 너무 추상적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조금 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슬픈 것은 슬픈대로 아픈 것은 아픈대로 있는 그대로 꺼내놓고 이야기해보자. 그래야 ‘노동에 대한 인식을 제고’한다는 근로자복지센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노동인권’은 영화제의 진짜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조마조마한 진짜 첫걸음을 내딛었던 2014년 첫 영화제는 예상했던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었다. 영화를 고르는 작업은 일일이 프리뷰를 거치고 기획단 회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고, 듣도 보도 못한 영화제에 초청에 흔쾌히 응하는 초대 손님들도 많지 않았다. 가용할 수 있는 예산과 사람, 인맥 다 동원해 치러낸 2회 노동인권영화제 ‘비정규직'은 다행히 50%이상의 객석을 채우고 마무리되었다. 3회 ’사람다운’에서 우리는 좀 더 용기를 냈다. 100%를 넘어서 대기 순번의 예매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더 다채로워졌다.


 그리고 2016년 4회 '깨어난 침묵'의 준비가 시작되었을 때, 사실 우리는 좀 놀랐다. 부족한 예산과 시간, 인력 때문에 홍보기간이 짧아서 안 그래도 인기 없는 주제의 이 영화제에 사람이 얼마나 들까 걱정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2주 가량의 예매 기간 동안 전 상영작이 100% 예매율을 넘기면서 영화별로 고르게 관객이 들었다. 그리고 작년에 왔던 사람들 중에 다시 오는 비율도 높았다. SNS 채널을 통해 느껴지는 반응도 지난해와 사뭇 달랐다. ‘관객과의 대화’에 응하는 초대 손님들의 반응도 달랐다. 작년 관객 366명, 올해 관객 402명이라는 숫자를 받아보며 뭔가 한 고비를 넘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서대문구노동인권영화제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구나.’ 세상을 만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짜 힘,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진짜 기회가 우리에게 이제 시작되었구나. 영화는 그렇게 ‘노동인권’을 세상에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직시할 수 있는 힘을 위한 조용한 권유


 사실 우리 영화제는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다. 김미례 감독님, 하종강 교수님은 2회 영화제부터 우리를 버텨주는 버팀목이시다. 매번 찾아가 자문을 구하면 이 영화제가 여적 살아있냐며 놀라워하며 반겨주고 초대 손님으로, 사회자로 드리는 부탁을 거절하신 적이 없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진짜 주인공들은 당연히 이 험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 감독들이고 죽음을 앞에 놓고 싸우는 수많은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를 감히 자평하자면, 서대문이라는 자치구에서 조곤조곤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노동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열어내고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 ‘노동자’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으며 사실은 어떤 존재인지를 함께 생각해볼 기회를,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어서 그런 기회를 가져보라는 우리의 소리 없는 권유이기도 하다. 당장 무엇이 바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고 노동인권에 대한 구체적인 현장을 목도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가 이어지는 동안에 불쌍하고 가엾은 노동이 아니라, 우리 삶을 만들어내는 힘찬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좀더 많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화를 함께 본 사람들이 비참한 노동인권의 현실에 가슴아파하기보다는 한 발짝을 더 딛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모였으면 한다. 그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5회, 6회를 계속해 열 수 있도록 노력하고, 더 나은 상영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몫일 테다. 우리는 해가 바뀌어도 ‘노동’이 잊혀진 사회, 불결한 것으로 치부하며 마치 없는 것처럼 취급받는 사회에서 노동을 잊은 그대에게, ‘올해도 서대문 노동인권영화제가 찾아왔습니다’라는 인사를 반갑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