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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0호 작큰영화제] 우리 모두의 사이를 걷는 디아스포라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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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10. 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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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0호 작큰영화제 2016.10.14]


우리 모두의 사이를 걷는 디아스포라 영화제


김호빈 (인천영상위원회)



[편집자 주] 약 130년 전인 1883년 인천이 개항을 하며 고려 이후로 무척이나 굳게 교류를 중단하고 있던 조선이 세계와의 문을 활짝 열게 되었습니다. 비록 인천항의 개항은 조선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일본의 압박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개항은 조선은 물론 한국 전체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이미 해외에서 온 이주민들과 함께하는 사회가 된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이주민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고, 온갖 차별적 시선이 횡횡하네요. 이러한 상황에서 2013년부터 조선이 세계와의 문을 연 첫 창구인 인천에서 ‘이주’를 주제로 한 ‘디아스포라영화제’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과연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디아스포라영화제를 주관하는 인천영상위원회의 김호빈 님이 직접 보내주신 글일 읽으며 같이 알아봅시다!




우리 삶으로서의 ‘디아스포라’ 




 인천은 한국 최초의 이민이 시작된 도시입니다. 그러한 역사성에 기반을 두어서 일까요. 인천은 현재도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새터민, 외국인 유학생 등 다양한 층위의 이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 인구의 3%에 달하는 수치라고 합니다. ‘살던 곳을 떠나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 이라는, ‘디아스포라’의 정의를 따르자면, 인천은 가히 디아스포라의 도시라 할 것입니다.

 

 그런 인천의 특수성을 대표하는 영화제가 바로 ‘디아스포라영화제’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다양성확산을 위해 주최하는 ‘무지개다리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올해로 어느덧 4회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이주민들, 경계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다양한 영화들을 다루고, 그들의 목소리를 강연, 대담, 공연, 전시 등의 방식으로 담아내며 작지만 내실 있는 영화제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재일조선인 지식인으로서 디아스포라문제를 연구하는,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가 3회와 4회 영화제에서 진행했던 특강 및 대담 프로그램 ‘D-아카데미’가 디아스포라영화제의 대표적인 부대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해 영화제 역시 2016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인천영상위원회, 인천문화재단이 공동주관하여 9월 2일부터 9월 4일까지 3일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치러졌습니다.


 올해의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영화를 중심으로 미술, 강연, 전시, 마켓, 공연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를 결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디아스포라’를 탐색할 수 있는 자리로 꾸며졌습니다. 전야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이야기의 역사, 역사의 이야기>는 인천의 제물포항을 출발해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향한, 우리나라 이민 1세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거미의 땅>, <경계>, <대답해줘>, <이바라키의 여름>, <홀리워킹데이>등 다양한 층위의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엄선된 장편 8편과 단편 4편이 관객들을 찾았습니다. 특히 <동주> 상영 후 진행된 이준익 감독과 윤동주 평전 <처럼>의 저자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의 만남, <고양이를 부탁해> 상영 후 이어진 정재은 감독과 <소년, 달리다>의 강석필 감독 간의 대화, <소셜포비아> 상영 후 진행된 여성학자 손희정 교수와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토크 등 다양한 게스트와 관객이 함께한 ‘사이토크’는 디아스포라적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풍부하게 공유되었습니다. 


 전시 섹션인 D-Arte에서는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작가가 탈북자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창작한 <여기와 저기사이> 展을 선보였습니다. 아카데미 섹션인 D-Academy에서는 대표적인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의 특별강연 <프리모레비를 찾아서>, 정연두 작가와 서경식 교수의 특별대담, 중구의 개항장 일대를 도보로 답사하는 ‘타박타박 디아스포라기행’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이란 테마로 플리마켓과 음악 공연이 어우러진 ‘만국시장’, 윤동주 문학관 다큐 상영, ‘사이책방에 세든 서점’ 등 다양한 부대 프로그램들이 디아스포라영화제 기간 동안 많은 관객들과 함께 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이주민 대상 미디어 교육프로그램 ‘영화 소(疎)란(LAN)’은 올해도 약 5개월간 인천 지역의 디아스포라(결혼이주가정, 화교, 유학생)를 대상으로 영화제작 워크숍을 진행하였고, 완성된 영화들을 디아스포라영화제 기간 중 프리미어 상영회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모두 다섯 팀(다문화사랑회 새꿈학교, 한국인천화교 소학-중학 팀, 아이다마을 싸이렌팀, 베트남 예술단 무지개 언덕팀)이 참여하였고, 이주민들이 갖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 소망 등이 개성적으로 드러난 5편의 작품들은 많은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지향하는 가치


 작년부터 올해까지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 일대는 1883년 개항 이후에 설립된 근대 건축물들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인천이 지닌 이민과 이주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여러모로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인천이라는 지역이 가진 특수성, 역사성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영화제는 그러한 지역적 특성을 넘어 좀 더 보편적인 차원으로 디아스포라의 외연을 확장해가며 4회째의 행사를 꾸려오고 있습니다. 이는 디아스포라가 단순히 물리적인 이산의 차원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처한 정체성과 관계의 문제를 가로지르는 핵심개념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최근 유럽의 난민 수용 문제에서 보듯, 세계 각지에서 급증하는 내전과 테러는 전통적인 의미의 디아스포라 문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습니다. 자유, 박애, 평등으로 대변되는 서유럽의 인도주의적 가치마저 무색케 할 만큼, 국가 간의 갈등과 반목은, 전통적인 국경을 더욱 커다란 장벽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단 ‘난민’이나 ‘망명자’와 같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디아스포라인 것은 아닙니다. 일찍이 독일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 사회의 핵심적 특성을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전통적인 사회가 고정적인 가치와 관계, 제도들에 기반을 둔 고체 사회라면 현대 사회는 모든 것들이 ‘액체’처럼 유동하고 부유한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는 떠돌지 않더라도 끊임없는 불안과 불확실성, 소외와 배제를 경험하는 현대 도시의 개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상적인 차원에서 디아스포라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사이를 걷는’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편견과 차별, 부당한 제도, 서로를 가르는 갖가지 ‘경계’들을 생각해보면서 ‘타자’로서의 디아스포라가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서 ‘디아스포라’를 바라보는 것. 그리하여 인위적으로 구획된 경계가 아니라 서로의 진정한 사이를 보기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걷는 ‘우정’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그러한 가치를 작게나마 내실 있게 구현할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디아스포라영화제의 모든 스텝들은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며 착실하게 영화제를 준비해왔습니다. 그런 스텝들의 열정적인 노력과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제 4회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무사히 그 3일간의 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서로의 사이와 차이의 공간을 인정하고, 그 사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합니다. 디아스포라영화제를 통해 많은 분들이 스스로의 사이, 서로의 사이를 발견하고 공동체 안에서 ‘좋은 사이’ 로 관계 맺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디아스포라영화제에 대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필자소개] 김호빈 (인천영상위원회)


사회학을 공부하였고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의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이런저런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에서 활동하였고 현재는 인천영상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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