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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9호 미디어인터내셔널] 국경을 넘어서는 노동영상운동의 새로운 이정표 : 제1회 라틴 아메리카 노동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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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19호 / 2005년 3월 22일 

 

국경을 넘어서는 노동영상운동의 새로운 이정표 :

제1회 라틴 아메리카 노동영화제

Festival Latinoamericano de la Clase Obrera (cine y video)

 

 

김 명 준 ( 미디액트 소장 / 노동자뉴스제작단 )

 

 

 

작년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제1회 라틴 아메리카 노동영화제가 개최되었다. 제3세계영화 운동의 발원지이자,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변혁을 꿈꾸며 실천하고 있는 남미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된 노동영화제는 20세기말 이후 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급진적인 노동영상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보여주는 소중한 행사였다.

 

노동영화제를 가진 나라는 많지 않으며, 그 역사 또한 길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노동운동에 초점을 맞춰서 지속적으로 개최되어온 영화제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보스톤, 산타크루즈, 한국의 서울 등 전지구상에 고작 10개 이하에 불과하며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는 그동안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노동운동의 오랜 역사를 생각해보면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인데, 곰곰이 따져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우선 노동영화제처럼 아예 영화제의 성격을 ‘노동’이라는 개념에 맞춘다는 것은 일반적인 영화제가 조직되고 운영되는 구조를 생각해보면 그 존재 근거 자체가 취약하다. 대부분의 국제 영화제는 국가의 지원 혹은 공적 기구의 지원에 의해서 유지되며 그러니까 비판적인 성격을 뚜렷이 하고 있는 노동영화제가 그런 식의 지원을 기대한다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아울러, 어느 정도의 물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노동조합들이 진보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으며 그래서 많은 경우 ‘노동운동’이라는 표현은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노동조합운동과 등치되기 일쑤다. 물론, 공적 지원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노동운동의 진보적 성격이 존재한다고해도 상당한 수준의 정보력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화제를 조직한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노동영화제도 노조 및 다른 노동운동의 지원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영화진흥위원회의 공적 지원 및 노동자뉴스제작단과 영화제지원단의 희생에 의해서 간신히 지탱되고 있다)

 

그런만큼, 남미 전역을 아우르는 노동영화제가 시작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우선 남미 지역의 노동운동이 20세기말 이후 사회변혁의 주요한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암시하며, 아울러 그러한 노동운동의 한 부분운동으로서 노동영상운동의 성과가 서서히 축적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일에 걸쳐 50여편의 영화가 상영된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한국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이중의 적>, 미국 레이버 비디오 프로젝트의 <항만에서의 총격>과 빅 노이즈 필름의 <4차 세계대전> (서울노동영화제 상영작) 등 3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미 지역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멕시코, 칠레, 베네주엘라 등에서 초청된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특기할만한 사항은 작년 서울 국제 노동영화제의 폐막작이었던 <레이문도>의 주인공으로서 군부독재에 의해 살해당한 아르헨티나 전투적 영화의 대표적 인물인 레이문도 글레이져의 회고전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21세기 자본의 세계화 시대를 돌파해야 하는 새로운 세대의 라틴 아메리카 영상운동가들은 60년대 이후 발전되어왔으나 이제 그 전통이 상당 부분 단절되어 버린 제3영화운동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작들중 - 비록 모든 작품이 스페인어로만 상영되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지만 - 브라질의 전투적 영화들은 독립된 특별 섹션으로 상영되었으며, 여러 영화들중에서도 단연 주목을 받은 작품은 수자원 민영화 반대 투쟁 등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볼리비아로부터 온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작품을 보러온 관객들은 대부분 학생들과 활동가들이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민중 봉기가 있었던 2001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노동영상운동은 그동안 투쟁과 생산의 현장을 주요한 소통구조로 삼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런 식의 영화제라는 공간에 대한 일반 노동자들의 참여는 부족한 편이었는데 (특히 주최 단체와 연관된 대중 운동 단체인 폴로 오브레로의 주구성원인 여성 반실업 노동자들의 참여는 생각보다 부족했다), 이런 현상은 영화제의 지속적인 개최를 통해서 서서히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주목할만한 부분은 영화제의 최종 프로그램 확정을 위한 사전 준비 과정을 전국 각지의 투쟁 현장과 학교에서의 공개 상영을 통해서 진행했다는 점으로서, 영화제의 준비과정을 교육 선전의 과정과 등치시키고 노동영상운동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기회로 삼은 매우 공세적인 기획이었다. 그 효과가 나타나서인가, 마지막 폐막작으로 상영된 미국 빅 노이즈 필름의 <4차 세계대전> 상영시에는 200여석의 객석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몰려들어 열띤 호응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이번 영화제의 경우,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와 유사한 기구인 아르헨티나 영화진흥기구의 공식적 지원을 확보한 것은 공적 지원을 계급운동의 영역으로 확보해내는 전향적인 시도였다. 초기에 주저하던 진흥기구의 지원 정책에 쐐기를 박은 것은 노동영화운동단체들의 연대 시위였고, 그 결과 기구측은 영화제에 약 300만원의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1000만원 정도) 현금 지원 및 포스터 인쇄를 후원했다. 특히 포스터는 영화제를 홍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보통 영화제 포스터의 4배를 넘는 초대형 포스터는 시내 곳곳의 게시판에 붙여져서 영화제를 홍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행사로서 기록될 이번 영화제는 그러나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우선, 아르헨티나 변혁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종파주의적 경향은 영상운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동자당 (Partido Obrero) 과 긴밀하게 연결된 영화제 주최단체인 ‘노동자의 눈’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로 영화제를 준비하고 진행했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정파적인 갈등은 옥의 티였다. 일부 단체의 경우 영화제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상영회를 영화제와 동일한 시간대에 경쟁적으로 개최하는가하면, 한 제작자는 사전 협의도 없이 영화 상영 직전에 발언 시간을 요구하다가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상영 테이프를 회수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올해 서울 국제 노동영화제의 상영작이었던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베네주엘라>에 등장하는 한 활동가의 말, “우린 전통적 의미의 모든 좌파 정당을 불신한다. 그들은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기보다는 자기 정당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가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의 역사적 의미는 큰 것이었다. 다양한 영상물의 상영을 통해서 노동영상운동이 하나의 진영으로서 제작자와 관객이 함께 되는 최초의 경험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및 미국 노동영상운동과의 연대 모색을 위한 질의 응답 프로그램, 전투적 영화운동 활동가들이 함께 한 두차례의 토론회 등은 국경을 넘어서서 활동가간의 이해를 강화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영화제 이후의 계획과 관련해서도 몇가지 중요한 결정이 있었다. 종파적 경향 때문에 모이기 힘들었던 활동가들이 국제 행사를 계기로 비공식적인 회의를 개최했고, 전지구적 노동영상운동의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참으로 어렵게!) 합의했다. 아울러, 향후 남미 영화제를 남미 전대륙으로 확산시키고 볼리비아에서 내년에 또 다른 남미 노동 영화제를 개최하자는 제안에 대해 참석자 모두가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것을 합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계획들이 어느 정도 현실화될 것인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이제 제1회 남미 노동영화제가 개최됨으로서 노동영화운동의 연대는 한국과 미국을 중심 축으로 전개되던 것으로부터 새로운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언어의 장벽, 종파주의, 재정 부족 (1년치 노동자 연봉이 30만원에 불과한 볼리비아의 감독들은 사흘에 걸쳐 차를 타고 영화제 현장에 도착했다), 대륙적 연대로 단결의 범위를 제한하는 경향 등 장애물은 여전히 많지만, 이들 노동영상운동의 연대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인 노동자계급 국제연대를 앞당기는 지렛대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후 가시화될 국제 노동영상운동 정보 네트워크의 출범을 위해 한국의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아울러 남미 노동영화제를 탄생시킨 견인차가 된 서울 국제 노동영화제의 올해 프로그램에서 남미의 전투적 영화운동의 성과를 더욱 풍부하게 소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국제 노동영상운동의 정보 집중 웹사이트 기획에 관심있는 분들은 연락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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